14개월 '롤러코스터 판결'… 사법 불신 비판 커

입력 2018-02-14 16:26   수정 2018-02-15 05:50

박근혜 재판만 남겨둔 '국정농단 1심' 정리해 보니

'안종범 수첩 증거 능력' 오락가락
"증거 안돼" 이재용 집행유예… 최순실 씨엔 '증거 인정' 중형 선고

기업 재단출연금 판결도 엇갈려
'삼성측 강요따른 피해자' 무죄… 롯데는 '묵시적 부정청탁' 인정
최순실 혐의 18개 중 12개 박근혜와 공모… 박근혜는 중형 불가피 예상



[ 이상엽 기자 ] 최순실 씨에 대한 선고가 이뤄지면서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 관련 재판은 사실상 박근혜 전 대통령만 남겨두게 됐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50여 명에 이르고 혐의 또한 직권남용부터 뇌물죄까지 다양했지만 13일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 신동빈 롯데 회장 등의 선고와 함께 마무리 국면이다. 하지만 지난 14개월의 법정 공방에서 핵심쟁점에 대해 재판부마다 제각각으로 판단해 사건의 실체를 드러내기는커녕 사법 신뢰를 흔들었다는 혹평도 나온다.


◆재판부마다 엇갈린 ‘롤러코스터 판결’

최씨의 1심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부와 달리 사건 판단의 향배를 좌우하는 안 전 수석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이 부회장 공소 사실과 최씨 혐의가 맞물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첩의 법적 효력을 둘러싼 재판부 간 판단이 엇갈린 것이다.

안 전 수석의 수첩은 이 부회장의 1심과 최씨의 조카 장시호 씨의 1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1·2심 등 국정농단 주요 사건에서 증거로 활용됐다. 해당 수첩은 안 전 수석이 2014~2016년 작성한 63권 분량으로 박 전 대통령 등의 지시를 날짜별로 받아 적은 것으로, 대기업 총수와 독대를 마친 박 전 대통령이 내린 지시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안 전 수석 수첩에 적힌 내용이 박 전 대통령 지시를 기재한 건 맞지만 독대에서 오간 내용까지 직접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는 없고 간접 증거로도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기업들이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행위에 대해서도 재판부 판단이 엇갈렸다. 이 부회장의 2심 재판부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지원한 삼성 측을 ‘강요에 의한 피해자’로 보고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김세윤 부장판사는 13일 대통령 지시를 어기기 어려웠을 것이란 점을 인정하면서도 박 전 대통령과 신 회장 사이에 롯데면세점 사업과 관련해 ‘묵시적인 부정한 청탁’이 오갔다고 보고 신 회장을 법정구속했다. K스포츠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 비용 명목으로 롯데그룹이 낸 70억원을 ‘뇌물’로 판단한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공모’만 모든 재판부가 동일 판단

수사 주체가 검찰 특수본 1기-특검-검찰 특수본 2기를 거치며 관련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이 이어지면서 영장전담판사를 향한 일종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도 논란을 불렀다. 이 부회장 등 중요 피고인에 대한 선고가 이뤄진 이후 해당 재판장에 대한 비판 및 판결에 대한 근거 없는 지적 또한 끊이지 않았다.

재판부 의견이 거의 유일하게 일치한 대목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공모했다는 판단이다. 최씨의 공소 사실 18개 중 12개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 관계가 인정됐다. 뇌물 범행은 물론 각종 직권남용이나 강요 혐의에도 박 전 대통령과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이 점은 최씨가 징역 2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는 데 핵심 전제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 선고를 앞둔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먹구름이 낀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은 최씨와 비슷하거나 더 중한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씨에겐 적용되지 않은 문화·예술계 지원배제나 청와대 문건 유출 등의 혐의도 받는 데다 전직 대통령 신분인 만큼 더 무거운 책임이 지워질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 재판부가 최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김 부장판사인 것도 악재로 평가된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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