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동휘 기자 ] “교수 연봉이 9년째 똑같다네요.”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임원 말 속엔 묘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대학 교수가 외부 활동에 골몰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는 얘기였다. 이어 그는 “28년 전 내가 배우던 교재를 아직도 사용하더라”며 “미국에선 대학이 일류인데, 한국은 기업이 일류인 것 같다”고 했다. 국내 대학의 경쟁력이 어떤지를 짐작하게 하는 일화다.
지방의 대기업 부장인 A씨는 조카가 삼수를 결정했다는 소식에 씁쓸한 입맛을 다셔야 했다. 본인이 다니는 회사 입사를 추천한 그는 조카에게 자신의 모교인 지역 국립대 입학을 권한 터였다. 누나를 통해 들은 조카의 결정 이유는 이랬다. “‘인 서울’ 대학 아니면 의미 없어요.”
대학 서열을 없애자는 말이 많다. 정책 과제로 제시될 정도다. 하지만 이미 한국의 대학 서열은 상당 부분 깨지고 있다. 글로벌 ‘일류’ 기업 눈엔 최상위 몇 곳을 제외하곤 ‘거기가 거기’다. 입시생 눈엔 ‘인 서울’과 ‘아웃 서울’ 두 범주만 있을 뿐이다. 하향 평준화 흐름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누가 더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등 해외 선진국 대학 얘기는 ‘별세계’의 일이다.
대학의 위상이 어쩌다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약 10년간 강제 시행된 ‘반값 등록금’ 등 과도한 정부 간섭, 과거에 안주하는 교수, 총장의 리더십 부재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원인이 복잡한 만큼 한두 가지 해법으로는 ‘대학 붕괴’를 막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등록금을 맘대로 올리게 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대학 하향 평준화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이제라도 속 터놓고 얘기해보자”고 했다. 영어유치원, 수능 개혁 등 유·초·중등 교육에만 집중하는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대학의 ‘품질’이 바닥에 추락한 상황에서 중·고교를 아무리 좋게 만들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지적이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창의적 인재를 배출해도 한국의 대학에 들어가면 곧바로 ‘취준생’ 혹은 ‘공시생’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교수 출신인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대학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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