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페트로' 사기극이냐, 기발한 발상이냐

입력 2018-02-25 18:18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인플레 타개책으로 내놨지만
미국 금융제재로 성공 불확실



정부 주도 첫 가상화폐가 나왔다.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발행하는 ‘페트로(petro)’다. 총 물량은 1억 개로, 1페트로 가치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1배럴 가격에 연동시켜 60달러다. 계획했던 물량이 다 팔린다면 베네수엘라 정부는 원화로 약 6조5000억원에 달하는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목적은 디폴트(default:국가 부도) 타개다. 고유가를 바탕으로 ‘모든 국민에게 무상원조’라는 비현실적인 ‘우고 차베스니콜라스 마두로 구상’이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법정화폐인 볼리비아화가 ‘휴지’가 된 여건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디폴트 타개책은 백약이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졌다. 특히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1만3000%를 예상할 만큼 하이퍼 인플레이션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경제고통지수(실업률+소비자물가 상승률)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치솟아 조국을 등지고 인접국으로 떠난 국민이 20%가 넘는다.

성공 여부를 떠나 페트로는 화폐 발행 역사상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 첫 가상화폐라는 점이다. 페트로 발행계획 물량 1억 개 가운데 최소한 50%만 소진된다 하더라도 법정화와 화폐개혁 문제를 비롯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가상화폐 정책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투자자에게도 ‘재생의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한 해 비트코인 가격이 19배 급등하는 과정에서 일반인은 ‘순간 폭락(flash crash)’ 직전에 가상화폐를 사들였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처지다. 한때 ‘제로’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았던 비트코인 가격이 다시 1만달러대를 회복하고 있다.

‘금본위제, 즉 브레턴우즈 체제 부활’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기까지 달러 가치는 금 가격에 연동(온스당=35달러)시켜 유지했다. 페트로 가치는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원유(1배럴=60달러)와 연계시켜 ‘원유 본위제’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테라(Terra)’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의 테라는 유로화 창시자인 리태어 전 벨기에 루벵대 교수가 주장한 세계 단일통화 구상이다. 테라 가치를 원자재 가격과 연동시킨다는 점에서 페트로와 비슷하다. 테라와 함께 달러라이제이션, 글로벌 유로화 등이 세계 단일통화 방안으로 논의돼 왔다.

페트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후손 대대로 물려줘야 할 부존자원인 원유를 현세대, 특히 차베스와 마두로 전·현직 대통령이 저지른 디폴트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비판한다. 베네수엘라 내부뿐만 아니라 중남미 주도 세력인 우파가 바라보는 시각이다.

반면에 기발한 혁신이라는 평가도 있다. 화폐 발행을 늘려 전쟁과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인플레이션 대책과 달리 페트로 발행은 고정돼 있어 베네수엘라 경제의 최대 난제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효과적인 디플레이션 대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베네수엘라 좌파 세력의 시각이다.

디폴트 타개책으로 페트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정부 주도 첫 가상화폐인 만큼 베네수엘라 국가 신인도가 선결요건이다. 3대 국제신용평가사가 베네수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junk)’ 단계로 강등한 지는 오래됐다. 가상화폐 투자를 바라보는 분위기도 부정적이다.

페트로 가치를 원유에 연계한 만큼 유가의 변동성(volatility)은 적어야 하고 수준(level)은 일정 수준 이상 유지돼야 한다. 금융위기 이후 각종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유가 변동성이 가장 크다. 대체에너지 개발이 많이 된 수급 여건에서 유가가 페트로 출발선인 배럴당 60달러 이상 유지되기 힘들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입장도 중요하다. 페트로 성공 여부의 열쇠(key)를 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베네수엘라와의 모든 직·간접 금융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줄타기 외교에 능숙한 마두로 대통령이 기대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도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하면 쉽지 않다. ‘희대의 사기극’이냐 ‘기발한 발상’이냐, 현재로서는 전자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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