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진로, 마트 판매 중단한 까닭은…

입력 2018-02-27 17:15  

10년 숙성 증류소주 원액
재고처리 위해 2007년 출시
10배 비싼 값에 시장서 외면

몇 년새 "부드러운 맛" 인기
주점 물량 공급하기도 벅차
하이트진로, 블렌딩 등 검토



[ 이유정 기자 ] ‘참나무통 맑은소주’란 술이 있었다. 요즘 배우 김희선을 모델로 쓴 ‘참나무통 맑은이슬’의 원조쯤 되는 술이다. 1996년 나온 이 제품을 ‘비운의 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프리미엄 소주로 내놨지만, 진로가 화의에 들어가며 단종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진로는 투자유치 등 도움을 받기 위해 끌어들인 골드만삭스에 배신당하며 법정관리를 거쳐 하이트에 인수당한다.

하지만 이 비운의 술은 하이트진로의 히트제품 ‘일품진로’(사진) 탄생에 공신이 됐다. 하이트진로는 늘어나는 일품진로 수요를 맞출 수 없어 최근 마트 판매를 중단했다.

◆비운의 술은 보물단지를 낳고

2005년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는 예상치 못한 고민에 빠졌다. 이천공장 한쪽에 쌓여 있는 수천 개의 오크통 때문이었다. 오크통에 담긴 것은 약 10년간 숙성한 증류소주. 진로가 1997년 경영난에 빠지기 직전 담가놓은 것이었다. 1년간 숙성해 프리미엄 희석식 소주에 블렌딩하는 용도로 썼지만 경영악화로 제품 자체가 단종됐다. 참이슬이 비교적 잘 팔리고 있었기 때문에 숙성된 증류원액은 별 쓸모가 없었다.

창고에 쌓인 오크통 처리를 고심하던 하이트진로는 2007년 일품진로를 출시했다. 희석식 소주(주정에 감미료 등을 넣어 희석)가 주를 이루던 시장에 10년 이상 숙성한 증류식 소주라는 파격적인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어떻게든 재고를 처리해보기 위한 시도였다.

시장에선 ‘이제까지 없던 소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40도가 넘는 위스키와 20도가 안 되는 소주 사이의 도수(당시 23도)도 어중간했고, 가격(출고가 기준 9400원)도 일반 소주보다 무려 10배 이상 비쌌다.

2010년 이후 프리미엄 소주 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다. 하이트진로는 2013년 25도로 도수를 높여 새롭게 일품진로를 내놨다. 판매가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판매량이 2014년엔 전년보다 두 배, 2015년엔 세 배 늘었다. 2016년과 지난해에도 40%가량 성장했다. 2013년 이후 연평균 성장률은 83.2%에 달했다.

◆숙성 원액 부족한 상황에

그동안 소매점과 음식점 등에 골고루 일품진로를 공급했던 하이트진로는 최근 마트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해 추석 때까지 내놨던 선물세트도 없앴다. 일품진로를 찾는 사람들은 늘고 있지만 원재료인 ‘10년 이상 숙성한 증류원액’ 물량이 달리기 때문이다. 판매가 크게 늘어난 2014년 오크통에 들어간 술은 2024년에나 팔 수 있다. 비운의 술은 ‘10년 숙성원액’을 만들어냈고, 시간이 흘러 없어서 못 파는 술이 된 셈이다. 마트에서 1만1000~1만2000원에 일품진로를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렵게 됐다.

하이트진로는 프리미엄 소주 시장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다변화를 검토 중이다. 지금은 숙성기간이 최소 10년 이상인 원액으로만 제품을 만들지만 최소 숙성기간을 5년으로 줄이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준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 말 ‘참나무통 맑은이슬’(알코올 도수 16도)을 내놓았다. 이 술은 주정을 기본 원료로 한다는 점에서 기존 희석식 소주와 비슷하지만 ‘참나무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한 쌀 발효 증류원액’을 넣어 품질을 높였다.

프리미엄 소주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1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전체 소주 시장(약 2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그만큼 성장여력이 크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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