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는 아름다운 덕목이다. 하지만 국가가 정색하고 강제한다면 의미는 반감된다. 우정을 법으로 강요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친구 간 배신이 못마땅하고, 알 만한 사이에 배임 사기가 많아진 듯하다고 ‘배신금지법’을 만들어 봐야 효과가 없을 것과 같은 이치다. 윤리·도덕과 법의 영역은 다르다.
2월 국회에서 ‘불효자 방지법’이 발의됐다. 부모에게서 재산을 받은 자녀가 부양 등을 잘 이행하지 않으면 증여재산을 원상으로 돌려주게 하자는 내용이다. 발의자인 박완주 의원은 ‘불효자 먹튀 방지법’이란 직설적인 법명을 달아 효행을 강조했다. 불효방지법 발의가 처음 이뤄진 건 아니다. 19대 국회 때 민병두 의원이, 20대 들어서는 민 의원 외에 비슷한 내용으로 서영교 이철규 의원이 내놓은 것도 있다. 강력한 법을 만든다고 효행이 늘어날지, 오히려 부모·자식 사이에 법적 분란만 부추기는 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국회, 법원까지 '만능국가론'
핵가족은 이미 보편화됐다. 고령화도 심화돼 간다. 일본에서는 90세 부모가 60대 노인 자녀에게 부(富)를 물려주는 현상을 경제의 활력 저하라는 관점에서 주목하기도 했다. 그래도 천륜을 법으로 풀기는 어렵다. 효과도 의심스러울뿐더러 법 만능의 부작용이 만만찮을 것이다. 더구나 형법 등에 존속학대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고, 민법으로 증여재산 반환소송도 가능하다.
효, 불효는 제3자가 쉽게 판단하기도 어렵다. 굳이 법으로 효도를 유도하자면 상속재산에 대한 획일적 분배 규정을 없애버리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민법의 유류분 규정을 아예 없애 평생 모은 재산은 소유자가 자유롭게 처리하도록 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효도하는 자녀에게 재산을 더 주는 게 쉬워지면 효도 따라올 것이다.
법이 윤리의 영역을 침범하면 ‘자유 개인’이 설 곳은 그만큼 좁아진다. 개인의 자유에 국가 개입이 최소화돼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민간기업 청렴도 조사를 하겠다는 발상도 그래서 걱정된다. 형법 공정거래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으로 부당 거래를 촘촘하게 감시 처벌하는 판에 국민권익위원회까지 청렴도를 외친다고 실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법과 감독 행정이라는 쇠주먹은 적게 쓸수록 훌륭한 정부다. 투명 사회는 우리가 갈 방향이지만, 정부가 겁주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더구나 기업의 청렴도라면 시장에서 평가받도록 하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오래간다.
'국가보육' 어린이집 입원서류 9종
국가가 개인사까지 챙겨야 한다는 국가개입주의는 법원에서도 보인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그렇다. 그들의 삶을 정부가 방조·조장했다는 논리다. 경제 개발기 때 고단한 삶 자체가 서러웠던 수많은 직업군의 모두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판이다. 메르스 환자에게 정부더러 배상하라는 판결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개입은 단순히 지원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경험칙이다. 정부의 ‘보편적 책임’ 이면에 있는 게 ‘보편적 개입’이요 ‘무차별 간섭’이다.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그래서 걱정스럽다. 국가가 어디든지 개입하라는 아우성은 민권 신장 차원을 벗어났다. 국가에 과도하게 기대며 정부의 개입·간섭과 통제까지 요구하는 것은 신성불가침의 자유권을 반납하는 행위와 과연 다른가.
보육이 국가통제에 들어가면서 바로 옆 어린이집 보내는데 아홉 종류의 서류가 필요한 나라가 됐다. 이것도 ‘국가만능주의’에 가려진 작은 폐단 사례다. 국가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조장하고 주권자인 국민은 자율을 반납하는 사회, 이런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을까.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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