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헛바퀴 도는 대학생 창업지원

입력 2018-03-01 18:18  

조아란 중소기업부 기자


“창업지원금을 생활비로 쓰다가 스펙을 쌓아 취업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전문가 조언도 잘 안 듣습니다.”

정부가 창업선도대학으로 선정한 모 대학에서 작년까지 창업 멘토로 출강하던 한 창업전문가(변리사)의 말이다. 창업 지원을 받는 상당수 대학생이 창업 자체보다 이력서에 경력 한 줄을 넣고 창업지원금을 타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고 털어놨다.

창업전문가 사이에선 ‘묻지마 창업’을 하는 대학생들을 부르는 신조어까지 유행이다. 사업을 지속할 능력은 없으면서 지원금에만 의지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팀은 ‘창업 좀비’, 본업은 제쳐놓고 창업 지원사업만 좇아 지원금 타내기에 바쁜 팀은 ‘창업 불나방’이라고 부른다. 이런 유형의 창업팀은 공통점이 있다. 창업 멤버 중 한 명 정도만 원래 사업 아이템을 키워가고 나머지 사람은 정부의 창업 지원사업 일정을 챙기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느라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여러 명의 창업 동아리 회원들이 한 가지 창업 아이디어를 서로 조금씩 변형해 이곳저곳에서 지원금을 타내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무분별한 퍼주기식 창업 지원 정책이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운영한 창업 지원사업은 33개다. 농림축산식품부,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특허청 등이 하는 사업까지 합치면 69개에 달한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청년 창업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비를 지원하는 보조금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한 가지 창업 아이템으로 여러 기관에서 중복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도 문제다. 관련 기관 간 정보 공유가 되지 않아서다.

중기부는 올해 창업 및 벤처 지원사업 예산을 3922억원으로 늘렸다. 중기부가 전체 사업예산 중에서 전년 대비 가장 큰 폭(9.8%)으로 늘린 사업이다. 예산은 늘렸지만 잿밥에만 관심 있는 ‘무늬만 창업’을 걸러내려는 노력은 여전히 미흡하다. 벤처신화를 꿈꾸며 창업전선에 뛰어든 대학생들에겐 맥이 풀리는 일이다. 이들의 창업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ar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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