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세상에 어느 독재자가 이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할까?”
영국 언론 챔버스에든버러저널의 기자는 1851년 한 기사에 이렇게 썼다. 이 기자가 가리킨 독재자는 철권 통치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표준 시간’이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영국 각 도시의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브리스틀의 시간은 런던에 비해 10분 늦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았지만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며 사정이 달라졌다. 열차를 사고 없이 운행하기 위해 철도회사들은 전국 어디에서도 런던 시간에 맞춰 기차를 운행했다. 그러자 지역 사람들은 런던의 영향을 받는 것에 불편해하며 “국민이 수증기의 위력 앞에 고개를 숙였다”고 수군거렸다.
영국 저술가 사이먼 가필드가 쓴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는 ‘시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우선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살아가던 인간이 어떻게 표준시간제라는 질서를 갖추게 됐는지를 탐구한다. 영국 사례에서 보이듯 증기기관이 큰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산업혁명 전후 급격하게 달라진 시간의 모습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산업혁명 뒤 인간은 ‘옳은가 그른가’보다 ‘빠른가 늦는가’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시간을 다룬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단축시키고 있다. 지금도 엄청난 규모의 주식 거래를 하는 데 아주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의 여유를 잃을 위험에 처했다. 저자는 “우리 삶을 질서 있게 만들려고 애를 쓸수록 점점 더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남기철 옮김, 다산초당, 464쪽, 2만2000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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