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의 데스크 시각] 서별관회의 부활하자

입력 2018-03-04 17:34   수정 2018-08-07 14:46

정종태 경제부장


정부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한국GM을 둘러싸고 벌이고 있는 수싸움에 대해 전직 재무관료가 이렇게 얘기했다. “정부가 무조건 지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중고차 거래를 비유로 들었다. 중고차를 팔려고 내놓은 A와 매입하려는 B가 있다. A는 본인이 탔던 중고차의 결함을 잘 알고 있다. 상대방이 가격을 깎을 수 있으니 공개할 순 없다. 당연히 B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거래에 임한다. 게임이론 용어로 ‘불완전 정보’ 상황이다.

이걸 GM과 한국 정부 간 수싸움에 대입하면 A는 GM이고, B는 정부다. 정부는 한국GM의 경영부실 실체를 모른다. 실사에 들어가려는 이유다. 실사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려면 GM 협조가 필수다. 과거에도 쭉 그랬듯 GM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GM사태, 정부가 지는 게임

더구나 GM은 한국 정부를 너무나 잘 안다. 2001년 대우자동차 인수 당시 김대중 정부와 담판을 벌여 헐값에 후려쳐 사간 GM 아닌가.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GM 수뇌부는 한국 사정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꿰뚫고 있다”고 했다. 국내 굴지 로펌까지 GM을 돕고 있다. 군산공장 폐쇄 시점을 6·13 지방선거 2주 전으로 제시한 것만 봐도 GM은 한국 정부의 약점이 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정부는 적전 분열 상태다. 기획재정부는 세제 지원 여부만 소관이라며 사실상 팔짱을 끼고 있다. ‘산업적 측면을 우선시한다’는 모호한 논리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총대를 멘 모습이지만, 산업부 실국장들조차 “소화할 수 없는 일을 왜 우리가 떠안는지 모르겠다”는 자조가 가득하다. 금융위원회는 존재감을 잃은 지 오래다. 여기에다 정치권은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있다. GM이 가장 원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게임이론에선 불완전 정보 상황에서도 중고차 구매자(B)가 판매자(A)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전략이 있다. 게임의 룰을 바꿔 A가 스스로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는 그런 전략이 나올 수 없다. 결국 중심추가 필요하다. 그 중심은 청와대가 잡아야 한다. 수단도 있다. 과거 서별관회의(거시금융점검회의)가 그것이다.

청와대, 뒤로 숨어선 안 돼

서별관회의는 중대 현안이 터져 단기 처방을 신속하게 내려야 할 때 가장 효과적인 회의체였다.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이해가 서로 다른 부처 장관들이 맞붙어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해법이 도출됐다. 과거 수많은 구조조정이 여기서 매듭을 지었다.

이런 서별관회의가 사라진 건 2016년 초다.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한진해운을 파산으로 몰아간 책임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하는 걸 피하기 위해 머리 회전이 빠른 당시 K수석이 서별관회의를 폐지했다. 대신 ‘산업경쟁력강화회의’라는 공개 회의체를 만들어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부처 장관들이 구조조정 논의를 이끌어가게 하고 청와대는 옵서버 형태로 뒤로 빠졌다. 한마디로 책임 회피였다.

그걸 지금 청와대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GM사태뿐 아니라 가상화폐 논란, 통상 문제 등 긴급 현안들이 터지고 있지만 청와대 참모들은 나서지 않고 있다. “내각이 주도권을 잡고 하라는 의미”란 이유를 달지만 “자신이 없다”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로 들릴 뿐이다.

한편에선 서별관회의를 부활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실무 경험이 없는 청와대 참모들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역할을 방기한 채 사후 보고만 받고 뒤로 숨는 일을 계속한다면 그런 의구심은 더욱 커져 갈 것이다.

jtch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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