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5G 기술 유출될라"… 미국 재무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제동

입력 2018-03-06 20:54   수정 2018-03-07 07:44

외국인투자심의위, 퀄컴주총 연기 명령… 이사 선임 표대결 무산
싱가포르계 브로드컴과 중국 화웨이 특수관계 의심… 이례적 조사



[ 허란 기자 ]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약 125조원) 인수합병(M&A)으로 주목을 받았던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시도가 미국 정부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자국 반도체 기업 퀄컴에 6일로 예정됐던 주주총회를 한 달 뒤로 연기하도록 명령했다.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은 이번 퀄컴 주총에서 표 대결을 통해 이사회 11명 가운데 6명을 새로 선임해 적대적으로 퀄컴을 인수하는 방안을 노려왔다. 미 재무부의 주총 연기 명령으로 브로드컴의 적대적 M&A 시도는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미국 정부, 이례적 개입

미 재무부는 “이번 조치로 CFIUS는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안을 전면 조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가 미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 조사한다는 것이다.

퀄컴은 앞서 브로드컴 몰래 CFIUS에 이번 인수안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주들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았다. 정치권도 나서 압박했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달 2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에게 각각 서한을 보내 퀄컴 주총 이전에 CFIUS 검토가 이뤄지도록 요청했다. 주총 표결에서 브로드컴의 승리가 예상되자 미 정부가 개입한 것이라고 마켓워치는 보도했다.


CFIUS 조사가 인수 협상을 중단시키는 것은 아니다. 다만 M&A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조사를 벌이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년 넘게 CFIUS 관련 일을 해온 익명의 변호사를 인용해 “미국 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를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보도했다.

브로드컴은 CFIUS 결정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반응했다. 브로드컴은 “현직 이사회를 지키려는 퀄컴의 뻔뻔하고 필사적인 행동”이라며 “이는 주주들이 브로드컴의 독립적인 이사 후보자에게 찬성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퀄컴은 “브로드컴이 CFIUS 결정에 놀랐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오히려 브로드컴에 화살을 돌렸다. 그러면서 “브로드컴이 국가안보 및 규제 문제를 무시하면서 투자자와 대중의 의중을 잘못 읽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 5G 기술 유출 우려했나

미 당국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로 5세대 이동통신(5G) 첨단기술이 중국 등으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5G는 기존 4세대 무선통신(4G)에 비해 △20배 빠른 속도 △10분의 1 수준 지연시간 △10배 많은 동시 접속 등이 장점이다. 모바일부터 사물인터넷(IoT), 보안, 자동차까지 5G 서비스가 기존 4G를 대체할 전망이다.

4G 칩셋의 제왕자리에 있는 퀄컴은 5G 칩셋 개발을 놓고 중국 화웨이 등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 정치권은 원래 미국 회사였지만 싱가포르의 아바고가 인수한 브로드컴이 퀄컴의 경쟁사이자 중국 기업인 화웨이와 오래 관계를 맺어온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미국은 최근 국가안보를 내세워 중국 기업 진출에 빗장을 걸고 있다. 알리바바 관계사인 결제업체 앤트파이낸셜의 미국 송금회사 머니그램 인수도 올초 CFIUS 제동에 걸려 무산됐다. 미국 2위 통신사 AT&T와 손잡고 미국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려던 화웨이 계획도 미 당국 압박에 의해 돌연 취소됐다. 미 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CFIUS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표면적으로는 국가안보를 내세우지만 중국 등 해외 자본으로부터 미국 기업과 기술, 데이터 등을 보호하려는 차원이다.

◆자존심 구긴 브로드컴

퀄컴 인수를 호언장담해 온 혹 탄 브로드컴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일로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해 11월2일 그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싱가포르에 있는 브로드컴 본사의 미국 이전 계획을 발표하고, 이튿날 퀄컴 인수 소식이 보도됐을 때만 해도 미 정부의 암묵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팽배했다. 하지만 CFIUS의 막판 제동으로 험로가 예상된다.

반도체업계 세계 4위인 브로드컴은 4개월 넘게 3위 퀄컴 인수를 추진해 왔다. 브로드컴이 처음 제안한 인수가는 1050억달러(약 113조원)였으나 신경전 끝에 1170억달러로 높였다. 퀄컴은 그러나 지난달 26일 “인수가를 1600억달러로 올려야 브로드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며 인수가를 더욱 높일 것을 주문했다.

브로드컴은 M&A 전략으로 성장했다. 이익을 극대화해 주가를 올린 뒤 증자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식이다. 브로드컴의 전신인 아바고는 2013년 스토리지와 네트워크칩 제조사인 LSI를 66억달러에 인수한 뒤 플래시스토리지 사업을 시게이트에, 네트워킹 부문을 인텔에 매각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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