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락근 바이오헬스부 기자)온라인으로 주문한 용기가 집에 배달됩니다. 받아든 용기에 침을 뱉은 뒤 정성껏 밀봉해서 용기를 보내온 곳으로 다시 보냅니다. 그로부터 6~8주 뒤 앞으로 유방암이 발병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분석이 담긴 보고서가 배달됩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암에 걸릴 위험을 알아본다.’ 언뜻 보면 미래의 모습을 다룬 영화에만 있을 법한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미국에서는 곧 현실이 됩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유전자 분석 전문기업 23앤드미의 BRCA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허용하면서인데요.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기업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직접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시행하는 일명 ‘DTC(Direct To Consumer)’ 가능 항목에 암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BRCA 유전자. 아마 사람의 유전자 이름 중에선 가장 유명세를 탔을 겁니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2013년 유방절제술을 받은 게 이 유전자에 변이가 발견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지도가 올라갔죠. BRCA 유전자는 유방암과 난소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졸리는 어머니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모, 외할머니 등 모계 가족 중에도 난소암을 앓은 환자가 여럿 있었기에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검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용은 의료기관마다 다르지만 50만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에서 DTC로 허용된 건 생명윤리법에 따라 체질량지수, 카페인 대사, 혈압, 혈당, 피부노화, 피부탄력, 색소침착, 비타민C 농도, 탈모, 모발굵기 등 12개 항목뿐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DTC 검사 가능 항목에 대한 특별한 규정 없이 과학적인 근거와 소비자의 오해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개별적으로 심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허용한 12개 항목은 물론이고,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고셔병, 혈우병 등 질병에 대해서도 DCT 검사 서비스를 허용했습니다.
DTC를 통하면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가격도 저렴합니다. 23앤드미는 BRCA 유전자 변이 검사를 별도로 판매하지 않고 기존에 판매하는 서비스에 담아 판매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100개 가까운 항목을 검사하는 데 199달러(약 21만원)면 됩니다. 졸리가 받은 유전자 분석 기업 미리어드 제네틱스의 검사 서비스는 4000달러(약 430만원)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 FDA가 허용한 23앤드미의 검사 서비스가 BRCA 유전자 변이를 충분히 검사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졸리가 받은 검사 서비스가 2만여개의 DNA를 검사했던 반면 23앤드미의 서비스는 3개의 DNA만 보기 때문인데요. 이마저도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후손에서만 주로 발견되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제기됩니다.
또 검사를 통해 유전자 변이를 발견하더라도 결국에는 의료기관을 찾아 다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유의미한 진일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후손은 40분의 1의 확률로 세 DNA 변이 중 하나를 갖고 있고, 여성의 경우 이 변이가 있으면 70살 때 45~85% 확률로 유방암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인종이 함께 살아 온 미국에서는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또 이번 허가를 시작으로 앞으로 더 다양한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나올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이사는 “유전에 기인한 암을 스크리닝하는 제품들이 앞으로 추가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1세기는 정밀의료, 예방의료의 시대입니다. 이를 통해 미래에 지출할 의료비를 절감하고 병변을 미리 발견해 일찍 치료함으로써 완치율도 높이자는 전략인데요. 이런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이 아직까지는 외국에서만 들려옵니다. 한국에서는 언제쯤 이런 일상이 펼쳐질 수 있을까요? (끝) /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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