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찬경 형제가 파고든 분단의 그림자

입력 2018-03-08 18:20  

아시아문화전당서 '파킹찬스'전


[ 양병훈 기자 ]
북한 여성 한 명이 한겨울에 맨발로 압록강을 건넌다. 물이 여자 허리춤까지 온다. 여자의 표정은 절박하다. 남한 드라마를 보다가 적발된 뒤 “처벌하지 않을 테니 남한에 가서 간첩 역할을 하라”는 지시를 받고 가는 길이다. 장면이 바뀌어 남한의 한 원룸. 어느새 남한에 정착한 이 여자는 화려한 염색 머리와 옷차림을 하고 인터넷 방송을 운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길을 가다가 ‘귀환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여자는 분단의 그림자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압록강을 건너던 날 허리까지 차올랐던 물이 여자의 주위에서 다시 차오른다.

영상미술 작품 창작팀 ‘파킹찬스(PARKing CHANce)’가 올해 첫선을 보이는 약 32분짜리 단편영화 ‘반신반의’ 내용이다. 광주광역시 광산동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반신반의’를 포함해 파킹찬스의 영상 작품 6개를 선보이는 ‘파킹찬스 2010-2018’ 전시회를 9일 개막한다.

파킹찬스는 친형제인 박찬욱 영화감독과 박찬경 현대미술가가 만든 영상미술 작품 창작팀이다. 형제의 이름에 ‘박(Park)’과 ‘찬(Chan)’이 있어 팀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파킹찬스가 2010년 결성된 뒤 단독 전시회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파킹찬스는 이번 전시회에서 중·단편 영화와 뮤직비디오 등 여섯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약 18분짜리 영상 ‘격세지감’은 특수 안경을 끼고 보는 입체영상(3D) 작품이다. 상영관에 들어가면 스피커에서는 박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대사와 음악이 나온다. 영상은 이 영화를 찍을 때 사용했던 남양주시 세트장에 마네킹을 갖다놓고 찍은 것이다. 영화 속 특정 등장인물의 대사가 나올 때 그와 용모가 비슷한 마네킹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음향 속 격렬한 대립과 잔잔하게 흐르는 영상 간 부조화가 이 작품의 핵심이다. 분단이 아득하게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모든 곳에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파킹찬스 작품은 이해하기 쉽고 서사가 있는 게 많다. 갈수록 난해해지는 일반적인 현대미술 영상 작품 흐름과 다르다. 미술에 대한 지식과 감상 경험이 없는 사람도 단편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들를 수 있다. 영상 작품 외에 두 형제가 찍은 사진 작품도 전시됐다. 박 감독의 풍경·정물사진 70여 점, 박 작가의 연작 사진 작품 2점 등이다. 이번 전시는 오는 7월8일까지.

광주=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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