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피폭의 땅' 산증인 된 소와 목동

입력 2018-03-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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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와 흙


[ 심성미 기자 ] 2011년 3월11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직후 원전 근처 지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람들은 집과 차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대피하기 시작했다. 원전 근처에 살던 동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의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안락사라는 방법을 떠올렸을 테지만 다른 방법을 택한 사람들이 있다. 《소와 흙》은 피폭됐지만 안락사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소들과 이를 돌보는 사육사들을 4년간 관찰한 기록이다.

당시 원전 피폭량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지만 일부 농민은 가족과도 같던 소들을 차마 버리고 떠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1주일에 두 차례 고방사선량 지역을 드나들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아 외양간과 목장으로 돌아온 농민들은 소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계속한다. 소들이 굶어 죽거나 살처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원전 사고 이후 경계구역의 소 3500마리 중 2015년 1월20일 기준 안락사된 소는 1747마리,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아 계속 사육하는 소는 550마리다.

목장 울타리 안쪽에는 지금도 많은 소가 살아남아 풀을 뜯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게 된 피폭 땅에서 소들은 고향의 대지를 지키는 ‘일소’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목장으로 다시 돌아온 사육사 중 한 명인 무라타와 요시자와는 “여기서 소를 사육하며 경험한 것, 실제 일어난 일을 전하는 것이 내 남은 20년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와 함께 피폭의 산증인이 되는 것이 그가 찾아낸 새로운 인생의 의미다. 가족과 같은 소들의 생명을 지켜내려는 목동들의 의기가 책 전체에서 느껴진다. (신나미 교스케 지음, 우상규 옮김, 글항아리, 320쪽, 1만50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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