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직원까지 주주 만나 설득했지만
주총장에 온 개인주주 17명 불과"
소액주주 비중 높은 115개사 '비상'
[ 홍윤정 기자 ] 지난해 말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제도)이 폐지(일몰)되면서 상장기업의 ‘주총 대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조짐이다. 영진약품을 시작으로 최소한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감사(위원) 등을 선임하지 못하는 상장사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감사 선임 때는 대주주 지분을 최대 3%만 인정하기 때문에 대주주 보유 지분이 많고, 주총장에 잘 나오지 않는 소액주주 비중이 높을수록 정족수 미달 가능성이 커진다.
◆“임시 주총 다시 열어봤자…”
영진약품은 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회 위원 세 명을 재선임하는 데 실패했다. 전체 발행 주식(1억8289만 주)의 61.45%가 주총에 참석했지만 ‘의결권 있는 전체 주식의 25% 이상 찬성’ 요건에 미달하면서 감사위원 선임안이 부결됐다.
감사위원 선임을 가로막은 건 3%룰이다. 대주주 전횡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때는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고 있다. 영진약품 대주주인 KT&G의 지분율 52.45% 중 3%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감사위원 선임 안건이 통과되려면 의결권 지분 50.55%(대주주 3%+소액주주 47.55%) 가운데 2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발행주식 중 12.64%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날 영진약품 주총의 감사 선임 안건 처리에 참가한 의결권 지분은 12%로 정족수에 미달했다. 찬성 주식 수 기준으로는 1.8%포인트 미치지 못했다. 영진약품은 이 같은 사태를 우려해 2주 전부터 영업직원 100여 명을 동원해 전국에 있는 소액주주를 만나도록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날 주총장에 나타난 소액주주(전체 인원 약 5만 명)는 17명에 불과했다.
회사는 임시주총을 열어 다시 감사위원 안건을 상정해야 한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 손실을 감내하고 총력전을 벌였는데도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며 “임시주총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대주주 지분 높으면 감사 선임 때 불리
올해 정기주총 시즌의 막이 오르자마자 감사위원 선임 안건 부결 사태가 벌어지면서 앞으로 감사(위원) 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상장사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영진약품처럼 기관투자가 비중이 낮거나 거의 없고, 소액주주가 많을수록 감사 선임은 힘들어진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12월 결산 상장사 중 소액주주 지분율이 75% 이상으로 높은 115곳이 의결정족수 부족에 따른 주총 안건 부결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관 보유 지분이 많지 않고 소액주주 지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코스닥 상장사들은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장사들은 소액주주의 주총 참석률을 높이지 못하는 데는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주주 의결권은 매년 말 기준으로 생기는데,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단타 매매로 손바뀜이 잦아 의결권을 위임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 투자자들의 주식 평균 보유 기간은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약 6개월(186일), 코스닥 상장사는 약 2개월(63일)에 불과하다. 의결권 기준과 주총 개최에 통상 3개월의 시차가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주식을 이미 매도한 주주들은 의결권이 있더라도 주총 안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며 “주주들의 주소도 실제와 다른 사례가 적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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