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의 데스크 시각] 금융당국이 권위 회복하려면

입력 2018-03-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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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 금융부장


정부와 당국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말이다. 정부가 행정을 중심으로 한 통치 기구를 전반적으로 지칭한다면 당국은 그중에서도 제재의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 기구나 산하기관을 가리킨다. 사법당국, 조세당국, 검역당국, 소방당국, 금융당국 등이 비교적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 당국이다. 하지만 산업당국, 관광당국, 체육당국 등의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해당 정부 부처의 업무가 육성에 방점을 두고 있으며 금지나 제재가 본업이 아니어서다.

美와는 너무 다른 韓 금융당국

당국은 룰을 지키는 일을 맡고 있기 때문에 권위가 있어야 한다. 룰이 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당국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할 이유도 없다. 영·미권 국가에서 당국(authorities 또는 authority)과 권위(authority)의 단어가 같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 금융당국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곳은 미국이다. 미 재무부가 정해 놓은 것을 지키지 않는 금융회사는 파산하기도 한다. 지난달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미 재무부가 라트비아 3위 은행인 ABLV를 북한 관련 기업 돈세탁 지원 혐의로 제재하자 이 은행은 2주일 만에 파산했다.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이 북한 관련 돈 거래를 하다 2005년 미 재무부에 적발돼 파산한 것과 같은 사례다. 재무부 외 미국의 다른 금융당국도 만만치 않다. 미국 뉴욕금융청(DFS)은 농협은행 뉴욕지점이 준법감시 체계를 갖추지 않자 110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전 세계 은행이 미 금융당국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을 철저하게 지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한국 금융당국의 처지는 미 금융당국과는 천양지차다. 원래 권위가 높지도 않았지만 지난해 11월 말부터는 그마저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금융회사가 금융당국 지시를 따르지 않는 일도 생기고, 따른다고 해도 마지못해 시늉만 하는 경우도 있다.

금융당국 간부 사이에선 “못 해 먹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 최흥식 금감원장이 지난달 공식석상에서 “(일부에서) 금감원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한국 금융당국은 이 지경을 자초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크게 세 측면에서다. 먼저 2012년 저축은행 뇌물수수 사건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작년 가을 금감원 채용 비리가 터졌다. 여기에 최 원장은 민간 금융회사 사장 재직 시절 채용청탁 의혹으로 구설에 올라 있다. 부정(不正)하지 않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으면 선수들이 심판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본연의 사명에 더 충실해야

둘째, 금융당국은 그간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회생이 힘든 기업에 자금 투입을 결정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한 게 수차례다. 법정 최고금리를 인하하면서 아직 만기가 안 된 대출에 소급적용하기도 했다. 금융실명법 해석을 두고선 과징금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대상이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셋째, 금융당국은 이제껏 시시콜콜한 일에 지나치게 간섭했다. 바뀐 제도에 맞게 신상품을 설계해 가도 퇴짜 맞기 일쑤였다. 창구 지도는 일상이었다. 민간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선출 문제도 금융당국이 나설 사안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주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금융위원회법 2조는 금융회사 자율성을 보장해 놓고 있다. 금융당국이 할 일은 건전한 금융시스템 유지와 금융산업 선진화다. 힘만 믿고 너무 나서면 권위주의적일 뿐이다.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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