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
민 의원 만나 사퇴철회 설득
성추행 의혹만으로 의원직 사퇴
정치권 '민병두 룰' 될라 전전긍긍
[ 김형호 기자 ]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자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힌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의 결정이 여야 정치권에 파장을 낳고 있다. 민주당은 ‘성급한 결단’이라며 사퇴를 적극 만류하고 나섰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민주당을 겨냥해 ‘성추문당’이라고 공세를 펴면서도 의원직 사퇴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 정치권은 실제 사퇴로 이어질 경우 민 의원의 사례가 자칫 국회의원에 대한 새 도덕적 기준인 ‘민병두 룰’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우원식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11일 민 의원에게 의원직 사퇴 이전에 사실관계 확인이 먼저라며 사퇴 재고를 요청했다. 우 원내대표는 전날 민 의원을 만나 사퇴 철회를 설득했으나 민 의원은 의사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함께한 원내 핵심 관계자는 “스스로에게 나름 엄격한 기준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민 의원이 현역 의원시절이 아니었더라도 10년 전 여성과 노래방에 간 일이 불거진 것을 굉장히 부끄러워했다”며 “지도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민 의원이 사퇴를 강행할 것 같지만 끝까지 만류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전날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민 의원이 2008년 총선 낙선 이후 알게 된 여성 사업가 A씨를 노래방에서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A씨는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알고 지내던 민 의원이 노래방에서 블루스를 추는 과정에서 갑자기 키스했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 직후 민 의원은 “정치를 하면서 한 인간으로서 제 자신에게 항상 엄격했다. 제가 모르는 자그마한 잘못이라도 있다면 항상 의원직을 내려놓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의원직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다만 “저는 문제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며 성추행 의혹은 부인했다.
민 의원을 만난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사건으로 의원직까지 사퇴하기에는 논리나 비례성에 비춰볼 때 과도한 게 아니냐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 때는 당일 즉각 ‘제명조치’를 내린 것과는 다른 잣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2008년은 민 의원이 총선에 떨어져 낙선한 상태로 권력에 의한 위계관계라고 보기 힘들고 피해자의 주장이 민 의원의 설명과 다른 점 등에서 안 전 지사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반박했다. 후반기 국회 원 구성 협상을 앞두고 원내 1당 지위를 사수해야 하는 국회 상황도 당 지도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치권은 민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을 경우 앞으로 국회의원의 윤리 기준이 한층 엄격해질 것으로 내심 걱정하고 있다. 한국당 등 보수야당이 민 의원의 의원직 사퇴에 관한 논평을 일절 내놓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민주당이 미투를 정쟁으로 몰고 가려다 부메랑을 맞고 있다”며 “여론 돌리기용으로 의원직 사퇴를 던졌을 가능성이 있는 것도 같지만 미투와 관련한 폭로가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가 반대하면 민 의원의 사직서가 국회에서 처리되기는 어렵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사직은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회기 중에는 국회 본회의에서 무기명 표결로 처리한다. 비회기일 때는 국회의장이 사직서를 수리하면 된다. 12일부터 임시국회가 시작되기 때문에 민 의원의 경우 표결 대상이다. 김영수 국회의장 대변인은 “의원직 사퇴는 회기 중에는 해당 교섭단체 및 나머지 교섭단체와 협의하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사직서를 내더라도 처리 여부는 여야 협의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12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불륜 및 여성 당직자 특혜공천 의혹이 불거진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충남지사 경선자격 여부를 결정한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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