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이상한 미투

입력 2018-03-11 19:16  

피해자는 처벌 원치 않아
"내부갈등에 이용" 의혹도
악용 사례 없어야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 이지현 기자 ] 지난 8일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의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선언을 두고 의료계에 뒷말이 무성하다. 이 병원 교수 12명은 A교수가 간호사 B씨와 학생 등을 성희롱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투 운동이 의료계로까지 확산된 사건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번 미투 선언은 이전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공개를 주도한 사람이 피해자가 아니라 사건을 수습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자들이었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실무책임자인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이 포함됐다. 피해자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병원 측도 이 같은 이유로 사건 조사를 중단했다. A교수는 “사실과 다르다”며 “법적 대응하겠다”고 발끈했다.

사건을 공개한 교수들과 A교수가 승진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도 의혹을 낳는 대목이다. 공개된 보고서에는 A교수가 의대 내 입시비리 등 각종 의혹을 언론에 제보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 때문에 “내부 갈등에 미투 운동을 이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해칠 우려가 있다. 병원은 직군별 지위 체계가 의료법에 정해져 있을 정도로 수직관계가 명확하다. 각종 권력형 폭력 사건이나 성추행이 빈번하다. 그러나 직접 나서서 고발하는 피해자는 드물다.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성폭력을 당했을 때 법적 대응 등을 통해 해결했다는 사람은 3.2%뿐이었다. 사건을 공론화하면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찍혀 이직할 때도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공의, 펠로 등 젊은 의사들이 병원 교수들의 폭력 사건을 고발하면서 의료계에 만연한 폭력 문화를 없애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선임 간호사가 후임 간호사를 괴롭히는 ‘태움’을 청산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미투 운동은 “권력형 범죄에 침묵하던 약자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이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도록 돕는 또 다른 창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목소리가 상대방 흠집내기나 내부 갈등에 악용되기 시작하면 그나마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도 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악용하는 사례는 없어야 한다.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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