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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형 기업과 협상을 했다. 우리는 남아도는 설비를 판매하려 했고, 중국 측은 마침 우리 설비가 필요했다.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회의를 마치며 우리 측 협상대표가 “오늘 순조로운 협상에 감사한다. 그러면 구체적인 것은 변호사끼리 정리하게 하자”고 말하며 그야말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주요한 의사결정 사항은 이미 합의가 됐으므로 세부 사항은 변호사끼리 얘기해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협상을 마치고 각자의 차량으로 곧바로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했는데, 도착해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해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끼리 이미 얘기가 다 됐는데 왜 변호사가 나서야 하는가”라며, 혹시 우리에게 다른 저의가 있는지 의심한 것이다.
"법이 인정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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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때,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자”는 우리 정부 측 발언이 보도되자 주위 중국 친구들은 “이제 정말 끝까지 가자는 거야”라며 매우 흥분했다.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주장할 때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에 의지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그것이 국제법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혹은 다른 문화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
봉착한 갈등 또는 문제에 대해 웬만하면 합리적인 해결을 원한다. 서구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중국도 당연히 합리를 추구한다. 다만, 중국의 합리는 서양의 합리와 다르다. 서양은 합법적인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하지만 중국은 말 그대로 ‘이치에 맞는 것(合理)’이 합리적이다. 법이 인정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法不外人情·법불외인정). “법이 완전무결한 최고의 기준이 아니다”라는 사고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악법도 법이다”는 위대한 준법정신은 중국문화 속에서는 상당히 희석된다. 중국인들은 법치(法治)를 “人以法治(인이법치·사람이 법에 근거해서 다스리는 것)”로 해석한다. 법치도 결국 그 실천 중에는 사람이라는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협상엔 '중국식 해결사'가 필요
중국에서는 변호사의 사회적 위치가 높지 않았다. 중국 사회학의 대스승인 페이샤오통(費孝通)은 과거 중국사회에서는 “소송을 대리하는 사람(訟師·송사, 지금의 변호사)은 쌍방을 부추겨 是非(시비)를 일으키는 등의 악행을 일삼는 자를 연상시켰다”고 말했다. 송사 또는 訟師爺(송사야·변호사 나으리)는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이가 아니라, 의뢰한 이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의뢰인을 대신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부류가 있다. 中間人(중간인), 調解人(조해인) 또는 和事老(화사로)라고 부르는데, 바로 ‘중국식 해결사’다. 우리에게는 ‘브로커’ 정도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중국식으로 매우 面面俱到(면면구도·세심하게 또는 체면을 세우며) 일을 처리한다. 이런 이들은 “쌍방 간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보다는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합법을 절대 기준으로 삼고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원만하게 처리되는 결과를 이끌어낸다.
중국의 체면은 때때로 중동 또는 서양의 명예와 비교되기도 한다. “명예를 위해서”라는 명분은 그럴듯하고, “체면을 위해서”는 통속적으로 들린다면 이는 용어 및 문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선입관에 불과하다. 협상에서 변호사는 당연히 필요한 전문가다. 하지만 중국과의 협상이라면 중국인의 체면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중간인’도 필수다. 합리적이지 않은 합법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법적이며 합리적인 방법을 지향해야 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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