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약품이 지난 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 정족수를 맞추지 못해 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하는 등 주주총회 대란이 현실화한 가운데 상장사 기업설명회(IR) 담당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볼멘소리다. 섀도보팅 제도가 폐지되면서 상장사의 의결권 확보에 비상이 걸렸지만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은 법무부에서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월 법무부에 기업이 주주총회 참여 주주에게 소정의 보상을 제공할 수 있도록 유권해석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상법에 따르면 ‘회사가 주주의 권리 행사와 관련한 재산상 이익을 공여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단순히 소액주주 참여를 독려하거나 의결 정족수를 확보하기 위해 제공하는 사은품도 금지하는 것인지 모호해 유권해석이 필요한 형편이다.
기업이 주주의 이메일과 전화번호 등 정보를 활용해 직접 연락할 수 있도록 상법을 개정해 달라는 요청에도 법무부는 묵묵부답이다. 2016년 말 금융감독원이 전자투표제 도입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이를 질의했을 때 법무부는 “개인 정보보호 등 사안을 고려해 검토할 것”이라고 답한 후 입을 다물고 있다. 의결 정족수 확보가 다급한 기업이 직원을 총동원해 주주명부에 적힌 주소지로 주주를 직접 찾아 나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2009년 증권거래법에 있던 상장회사 특례조항이 상법으로 넘어가면서 예견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시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법무부가 상장사 지배구조와 관련한 법 권한을 가져가면서 주주총회 대란이 현실화해도 주주총회 활성화 대책이 발 빠르게 진전될 수 없는 구조가 돼버렸다는 얘기다.
법무부가 빗발치는 상법 개정 요구를 모두 수용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하지만 상장사 특례법안을 가져간 지 10년이 다 되도록 법적 수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는다면 법 권한의 재분배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하수정 증권부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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