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아람코 IPO 앞두고
'몸값' 불리려 유가 부양 나서
이란은 미국 셰일 증산 우려에 반대
6월 회의서 러시아 결정이 변수
감산 합의 깨지면 유가 급락할 수도
[ 김현석 기자 ] 석유수출국기구(OPEC) 내 1, 3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국제유가 수준을 놓고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사우디는 배럴당 70달러대를 원하지만 미국산 셰일오일 증산을 우려하는 이란은 배럴당 60달러대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종파적, 정치적으로도 앙숙인 두 나라의 충돌은 지난 2년간 국제유가를 지탱해온 OPEC의 감산 합의를 뒤흔들 수 있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좀 더 높게 인정받기 위해 상장을 내년 상반기로 미룰 것으로 알려졌다.
◆아람코 상장이냐, 셰일오일이냐
비잔 남다르 잔가네 이란 석유장관은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를 통해 “OPEC이 국제유가를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을 두려워해서다. 그는 “유가가 배럴당 70달러까지 오르면 셰일오일 생산 증가를 촉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에 달하자 미국의 산유량은 지난주 사상 최대인 하루 1040만배럴까지 증가했다. 2014년 7월 100달러 선이던 유가는 셰일오일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2016년 초 배럴당 20달러 선으로 폭락했다.
사우디는 더 높은 유가를 원하고 있다. 칼리드 알팔리 사우디 에너지장관은 지난 1월 “셰일오일이 우리를 꺾을 것을 우려하지 않는다”고 말했으며, 2월엔 OPEC 주도의 감산 합의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자고 주장했다. OPEC과 러시아, 멕시코 등 주요 산유국은 작년 1월 하루 180만배럴 감산에 돌입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엔 올해 말까지 감산을 연장하기로 하는 기본원칙에 합의했다.
알팔리 장관이 유가 목표로 배럴당 70달러를 제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사우디를 이끄는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개혁정책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 급선무다. 아람코 상장은 그 핵심축이다. 아람코가 IPO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평가받으려면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수준에서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동산 유가를 대표하는 두바이유는 12일 배럴당 60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오는 6월 감산 논의가 분수령
사우디와 이란은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차기 회의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잔가네 장관은 WSJ에 “6월 회의에서 자체 생산량을 합의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루 380만배럴을 생산 중인 이란은 10만배럴 증산이 가능하다. 그는 산유국들이 2019년부터 생산 제한을 지금보다 완화하는 데 합의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사우디에 맞서겠다는 얘기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를 이끄는 이란 사이에는 종파적, 정치적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가 기대치를 둘러싼 사우디와 이란 간 이견이 계속되는 가운데 비OPEC 국가 중 영향력이 큰 러시아가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장관은 지난달 국영 TV에서 당시 유가(배럴당 64달러)에 대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 사우디가 감산 연장을 추진할 때도 기본원칙에 찬성하면서 올 6월 회의에서 재논의하자는 의견을 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이란에 좀 더 가까운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우디, 아람코 상장 연기 검토
OPEC 위주의 감산이 흔들린다면 국제유가는 충격받을 가능성이 있다. 2016년 1월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대로 폭락한 것도 셰일오일 증산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난 이란이 산유량을 늘린 영향이었다.
사우디는 당초 올 하반기를 목표로 한 아람코의 기업공개 시점을 내년으로 늦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람코의 가치평가 작업이 사우디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2조달러(약 2129조원)로 인정받는 것을 희망한다. 그래야 목표대로 지분 5%를 매각, 1000억달러를 조달해 경제개혁 ‘실탄’으로 쓸 수 있다.
시장에서는 현 유가 수준에서 2조달러 목표는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기업 가치를 높이려면 유가가 더 올라야 한다. 아람코가 수십 년간 베일 속에서 운영된 데다 사우디 정부와 밀접하게 엮여 있어 재무건전성 등이 불투명한 점도 지적된다.
FT는 상장 후보지에선 영국 런던이 앞서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런던과 미국 뉴욕, 홍콩, 일본 도쿄 증시 등을 상장 후보지로 검토해왔다. 알팔리 장관은 최근 CNN에 “아람코는 미국의 (복잡한) 소송과 법적 책임 문제 같은 위험에 휘말리기엔 너무 크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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