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 삼성전자의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중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성장이 삼성전자의 현 상황과 맞물려 신성장 사업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암호화폐 채굴 전용 반도체 ‘에이직(ASIC)’ 주문량은 대폭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삼성전자에서 에이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진 않다. 수십 만대 규모로 양산하는 여타 반도체와 비교하면 맞춤형 반도체인 에이직의 생산량은 미미한 수준. 삼성전자 관계자는 “D램이나 낸드플래시와 비교하면 에이직 생산량은 보이지 않을 정도”라고 평가했다.
적은 비중에도 에이직이 삼성전자의 효자 사업으로 부상한 것은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에서 삼성전자와 대만 TSMC 사이 경쟁관계에 기인한다. 삼성전자는 TSMC와 퀄컴, 애플 등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수주를 두고 경쟁을 벌여왔지만 최근 TSMC에게 최근 퀄컴 AP를 빼앗긴 것 .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그간 'A7', 'A9' 등 애플의 AP와 ‘스냅드래곤 845’ 등 퀄컴의 AP를 생산해왔다. 각기 애플과 퀄컴이 설계를 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가 설계대로 생산만 맡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고자 DS부문 시스템LSI 사업부에 있던 파운드리팀을 사업부로 독립시키기도 했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할 경우 퀄컴과 같이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 업체들이 도면 유출을 우려해 생산을 맡기기 꺼린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A9 이후 애플 AP 생산은 TSMC에게 넘어갔고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가장 큰 고객이었던 퀄컴도 지난해 7나노 AP를 TSMC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일감이 사라진 셈이다.
이 시점에 삼성전자의 새 먹거리로 떠오른 것이 암호화폐 채굴기다. 통상 암호화폐 채굴은 그래픽카드(GPU)를 사용해 연산을 수행하고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받는 작업이다. 채굴기 수요가 늘며 그래픽카드 가격이 크게 올랐고, 품귀현상이 지속돼 암호화폐 업계에선 에이직 채굴기가 새롭게 부상했다. 에이직 채굴기는 암호화폐 채굴에 필요한 기능만 들어가서 가격이나 수급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다. 동일 작업 기준으로 전력소모가 그래픽카드보다 적은 것도 장점이다.
파운드리 공장을 놀릴 상황에 처한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사업이다. 더군다나 암호화폐 채굴용 반도체를 생산하며 전장부품 사업 등에 도움이 될 그래픽 반도체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암호화폐 채굴용 반도체와 그래픽 반도체는 둘 다 병렬연산에 특화돼 기술적 차이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현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상무는 지난 1월 개최된 컨퍼런스콜에서 “암호화폐 채굴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관련 반도체 주문이 크게 증가했다”며 "14나노와 10나노 외에 8나노 등 신규 공정 노드에 대한 암호화폐 업계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절대적인 주문량이 많다고 하기보다 아예 없던 시장이 생겼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비트코인 채굴 하드웨어(HW) 업체 바이칼은 지난 1월 삼성전자 14나노 파운드리 공정을 통해 채굴 전용 에이직 양산을 시작했다. 바이칼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한 칩으로 신형 비트코인 채굴기를 출시할 계획이다. 중국의 채굴 기업도 삼성전자에게 에이직을 공급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14나노는 이미 공정 개발비도 모두 회수했기에 물량만 꾸준히 늘어난다면 암호화폐 채굴용 반도체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이익률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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