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일자리자금' 소진에 온갖 무리수 … 이러려고 세금 올렸나

입력 2018-03-13 17:37  

정부의 일자리안정자금 집행 과정에서 희한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접수처인 근로복지공단 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에 직원별 ‘신청자 확보 할당량’이 정해지고, 실적 압박에 기관 고유업무가 차질을 빚을 정도라고 한다. 급기야 이들 기관 노동조합들이 연대 성명으로 “일자리안정자금 사업이 보여주기식 실적 위주로 흘러간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한경 3월13일자 A1, 3면).

올해 3조원의 예산이 책정된 일자리안정자금은 30인 미만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근로자 1인당 월 13만원을 보조한다. 정부는 환영받을 시혜 정책이라고 기대했겠지만, 현장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1월 신청률이 3.4%에 그칠 정도였다. 그나마 연초 장·차관들과 청와대 참모들이 총출동해 대대적으로 홍보한 결과였다. 사업주들이 외면하는 것은 지원금을 받아봐야 4대 보험 가입 등을 감안할 때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에도 지원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크게 뛴 임금으로 계속 고용해야 하는 부담이 근본 요인이다.

민간의 임금을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됐다. 하지만 ‘소득주도 성장’에 매진해온 정부는 오류를 인정하는 대신 신청자 모집에 무리수를 뒀고, 결국 해당 공단 직원들의 집단반발에 직면하게 됐다. 현장에서는 신청 사업장 서로 뺏기, 중복 접수, 미자격자 접수 같은 부조리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이런 무리수에도 신청자는 정부 목표(236만4000명)의 절반을 밑도는 게 현실이다.

원하지도 않는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신청을 호소하고 강권하고 있는 게 일자리안정자금의 현주소다. 이렇게 집행되는 3조원은 지난해 ‘거꾸로 정책’이라는 숱한 비판에도 강행한 법인세 인상에 따른 올해 세수 증가 예상분(2조3000억원)보다도 큰 금액이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 인하 경쟁 중인데, 한국만 대기업 법인세를 올려 더 걷힌 세금으로 기피하는 사업주들에게 억지로 받아가라고 하는 셈이다.

이러면서 청년실업을 명분으로 추경예산 편성까지 논의하고 있다. 기업투자와 경제활성화의 결과인 일자리를 세금으로 쉽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세금을 이렇게 마구 써도 되는지, 정책 책임자들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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