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개헌안 초안 청와대에 보고
'근로' → '노동'으로…공무원 노동 3권도 보장
"밀실작업 후 국민 개헌안이라니"…졸속 논란
[ 조미현/서정환 기자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개헌 자문안은 ‘경제민주화’ 내용을 대폭 강화한 게 특징이다. 재산권 침해로 논란이 된 토지 공개념을 명문화했다. 공무원 노동 3권 보장,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등 노동계에서 주장해온 내용도 대거 포함했다. 반면 개인의 자유에 바탕을 둔 사유재산권, 창의적인 기업 활동 등의 가치는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해 이대로 개헌이 이뤄지면 “시장경제 원리의 핵심인 경제 자유를 후퇴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달 만에 나온 개헌 자문안
개헌 자문안은 문 대통령 지시로 지난달 13일 자문특위가 구성된 지 한 달 만에 나왔다. 특위 위원 33명은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도입하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현행 헌법은 국가가 국토의 균형 있는 이용·개발을 위해 필요한 제한을 할 수 있도록(112조) 돼 있을 뿐 토지 공개념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본주의 경제질서 및 그 근간인 사유재산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진보진영에선 토지의 유한성, 사회적 불평등을 이유로 토지 공개념을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해구 특위 위원장은 “토지의 소유와 집중의 불균형이 사회·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는 공감대가 높아졌다”며 “토지 공개념을 보다 구체화해 국가의 토지 재산권에 대한 의무 부과와 권리 제한을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헌법 119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도 구체화했다. 정 위원장은 “경제민주화 조항이 하위입법에서 효과적으로 반영되는 데 한계가 있고 의미가 모호했다”며 “시민의 자유 및 재산권과 직결될 수도 있는 부분이어서 복수안으로 대통령에게 제안했다”고 했다. 자문특위는 문 대통령이 최종 결정자라는 이유를 들어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경제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국가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계 주장 대거 반영
자문안에는 노동계 주장이 다수 반영됐다. 대표적인 것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반영이다. 남녀 차별 및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해 동일 가치 노동에 동일임금을 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에 대해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자문특위는 여론과 배치되는 노동계 요구도 수용했다. 헌법 조문에서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다.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근로(勤勞)라는 단어가 사용자(기업) 중심적이라는 게 노동계의 오랜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자문특위 여론 수렴 과정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공무원의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해 정 위원장은 “여론조사뿐 아니라 다양한 채널로 의견 수렴을 했고 많은 검토 끝에 자문안에 반영했다”며 “다만 군인, 경찰처럼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소상공인 육성과 보호, 소비자 권리 등도 헌법상 국가의 의무로 명시됐다.
헌법상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는 방안은 제안하지 않았다고 자문특위는 밝혔다. 이는 자유를 삭제하는 데 대한 보수 측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 의무 과도하게 명시
전문가 사이에서는 개헌자문안이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 근거한 개인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국가 의무를 과도하게 명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토지 공개념 명기와 관련해 “토지가 희소한 자원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국가가 이를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와 개인의 균형이 깨지고 국가의 힘이 너무 세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자문안이 ‘졸속’으로 마련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0여 일간 자문위원들끼리 밀실에서 하듯이 해 놓고 국민 개헌안이라고 ‘국민’ 딱지를 붙이면 어떻게 하느냐”며 “절차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이에 “자문특위는 그동안 개헌과 관련한 공론 과정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지 그것만으로 자문안이 마련된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조미현/서정환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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