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일훈 기자 ]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의 리조트사업부) 중에 미래 생존능력이 더 뛰어난 기업은 어느 곳일까. ‘향후 30년 뒤 둘 중에 하나만 살아남는다’는 가정 아래 전 재산을 걸라고 하면 어디에 베팅을 해야 할까.
현대 비즈니스의 복잡성을 절감할수록, 단절적 변화의 무관용적 속성을 체감할수록 삼성전자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국내 최대 놀이공원과 일류 골프장을 갖고 있는 에버랜드의 안정적 생존능력에 더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봄·가을이 짧아지는 기후변화와 언제든 청소년들의 발길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게임 대작들의 등장이 신경 쓰이지만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에버랜드는 삼성전자처럼 글로벌 거대 정보기술(IT)기업들의 견제와 중국의 인해전술식 추격을 받고 있지도 않다. 국내 사업 입지는 탄탄하고 독보적이다. 해외 레저기업들이 국내로 몰려올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한국 특유의 까다로운 규제와 인허가를 돌파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제 웬만한 해외 기업들도 잘 알고 있다.
시장 탓만 하고 있나
물론 삼성전자는 에버랜드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생존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오랜 기간 축적한 저비용 고효율 구조, 세트와 부품을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 글로벌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구현할 수 있는 힘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런 능력이 30년 뒤의 생존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과거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민하고 위험해졌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것을 안갯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렸다. 장차 어떤 기업이 경쟁자로 등장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삼성전자를 불안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반도체를 제외한 모바일 디스플레이 TV 가전 등과 같은 주력 사업이 조금씩 피로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요인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든 신흥국에서든 소비자가전 부문의 시장점유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이렇다 할 만한 히트 제품도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구도 비단길 예약 못해
모바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내놓은 갤럭시S9에 대한 시장 반응은 전작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국 저가폰 때문만은 아니다. 지갑을 열 만큼 혁신적이지 않다는 얘기가 많다. 두 겹, 세 겹으로 접을 수 있는 플렉시블폰을 진작에 개발하고도 아직 UI(사용자 환경)조차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삼성전자의 진짜 실력이 아닐까.
반도체도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40분간의 정전으로 수백억원어치의 웨이퍼를 고철로 만들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사고를 냈다. 삼성 특유의 관리 시스템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거대 기업이 무너지기 전엔 오랜 기간에 걸쳐 전조들이 나타난다. 요즘 삼성전자 주변에서 들려오는 여러 난맥상이 그 전조가 아니기를 바란다. 조직 관료화에 따른 일시적 퇴행이거나 총수 부재에 따른 후유증일 수도 있다. 애플 구글 아마존도 비단길을 예약해 놓고 있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위기감을 갖고 있느냐다. 스스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일하고 있느냐다. 그룹 감사팀까지 해체된 마당이 아닌가. 임직원들의 자발적 각성과 내부 혁신이 절박하고도 긴요한 시점이다. 삼성전자는 30년이 아니라 50년, 100년을 가야 한다.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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