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성미 기자 ]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거예요.”(…) 왜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한다고 할까? 너무 마음이 약해서 병을 옮기는 벌레의 목숨은 빼앗지 못하지만 아이의 생명에는 기쁘게 도끼질을 할 수 있다는 뜻일까?’(156쪽)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동시에 수상, ‘미국 문학의 대모’라 불리는 토니 모리슨(사진)의 최신작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가 출간됐다. 보통 흑인보다 더 새카만 피부로 태어나 가족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1990년 주인공 브라이드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하며 그들을 떠난다. 피부색을 보고 경악한 어머니는 의무감에 딸을 키우긴 하지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엄마 대신 ‘스위트니스’라고 부르라고 시킨다. 브라이드는 어머니가 자신을 체벌이라도 해주기를 바랄 만큼 사랑에 굶주리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여섯 살 때는 한 백인 여성을 아동성폭행범이라 지목한다. ‘백인을 감옥에 보냈다’는 성취감에 취한 어머니는 잠시나마 브라이드가 그토록 바라던 모정을 잠시나마 보낸다.
전작인 《빌러버드》 《자비》 등에서 뿌리깊은 인종주의 사회에서 흑인 여성들이 어떻게 견뎌내왔는지 그렸지만 저자가 이번 신작에서 보여주려 한 건 ‘인종주의 사회에서 흑인이 감내해야 했던 차별과 억압’이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사회에 남아있는 차별 문화가 어떻게 끈질기게 후대의 아이들을 괴롭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브라이드는 성인이 된 후 자신을 경멸했던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만,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붙였던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까지 도망치지는 못한다. 1인칭 서술기법을 통해 브라이드의 내면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저자는 차별에 무감각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끈질기게 아이들의 일생을 억압하고 생채기를 내는지 생생하게 그린다.
부모로부터 버림받다시피 한 브라이드가 책 초반부에 오히려 ‘검음’을 무기로 화장품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 다른 소설이라면 책의 결말에 해당할 만한 얘기다.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차별을 내면화한 어른들과 검은 피부를 아름답다 숭배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그의 작품 세계 안에서 세밀하게 주조한다.
그러나 저자는 되물림되는 상처와 슬픔으로 얼룩진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저 상처 안에 머물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브라이드는 비슷한 상처를 간직한 남자친구 부커와의 소통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책의 제목처럼, 87세 노년의 작가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축복같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문학동네, 정영목 옮김, 248쪽, 1만3500원)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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