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를 받은 사람은 있는데, 규제를 한 사람은 없다고 하는군요”(A증권사 임원)
한국경제신문이 23일 게재한 ‘증권사 신탁 투자 조이는 금감원”이란 제하의 기사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부인하는 취지의 해명을 내자 업계가 보인 냉소섞인 반응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날 금감원이 증권사가 신탁자산을 활용해 상환전환우선주(RCP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투자를 금지하는 ‘구두 지침’을 내렸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신탁계정에서 자금을 출자받아 운용하는 벤처캐피털(VC) 등 운용사들은 감독원의 구두지침 뒤 벤처기업 RCPS 투자를 잇따라 보류하는 등 파장이 번지고 있다고 전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금감원은 “증권회사의 신탁재산에 속하는 금전으로 사모사채가 편입된 펀드가입과 관련하여서는 어떠한 지침도 내린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이에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전화를 받은 사람은 있는데, 전화를 한 사람은 없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한 운용사 대표는 “논란이 생기면 그런 적이 없다고 발을 빼면 된다. 행정 집행 과정에서 ’구두 지침‘이 자주 활용되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지만 지침을 받은 회사들은 절대 어길 수 없다. 감독·조사 권한을 갖고 있는 감독당국의 칼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원의 ’그림자 규제‘는 이번만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금융당국의 구두지침이 각 영역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게 금융업계 종사자들의 전언이다. 최근 시중은행 가계대출 증가폭을 전년대비 6%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한 ‘가계대출 총량규제’가 대표적 사례다. 금감원은 은행별 가계대출 사업계획을 보고 받은 뒤 “너무 높은게 아니냐”고 압박하는 방식으로 총량규제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각 은행들은 금감원 눈치를 보면서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지난해엔 저축은행들이 가계대출 총량규제(전년대비 증가폭 5% 이하)를 당했다. 금감원은 당시에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구두지침을 하겠느냐”며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한 저축은행 대표는 “가계대출 총량규제 때문에 지난해 당초 계획보다 순이익이 60억원이나 줄었다”며 “'창구지도' '구두지침'으로 불리는 비공식적 규제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감독당국이 그림자 규제를 혁파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대대적인 혁신작업에 나섰던 게 불과 4년전 일이다. “요즘 들어 금감원의 각 분야별로 경쟁하듯 그림자 규제를 휘두르고 있다. 4년전 보다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된 것 같다”는 한 투자업계 대표의 말을 감독당국이 곱씹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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