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취업 청년 소득 지원, 일자리안정자금을 동원한 최저임금 인상 보완책,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역대 최대 수매 등 잇따른 단기대책이 대표적 사례다. 아동수당 신설, ‘문재인 케어’ 등 선심성 대책은 죄다 앞당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추가경정예산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경제 문제 대응이 이런 식이면 사회·환경 등의 대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돈을 풀어 뭔가 하겠다는 정부일수록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팔기 일쑤다. 하지만 케인스가 그 전제조건으로 강조한 “정부는 지적(知的)으로 뛰어나야 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경구를 얼마나 새기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가재정 부담 따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정책은 포퓰리즘의 극치요, 미래 세대로의 부당한 책임 전가에 다름아니다.
문제는 단기 성과주의에 혈안이 된 ‘핌투’만이 아니다. ‘뜨거운 감자는 내 정권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님트(NIMT: not in my term)’ 역시 이 정부 들어 더했으며 더했지 덜하지 않다. 비정규직·청년실업 등의 이슈와 맞물려 있는 강성노조의 기득권 문제,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풀어야 할 최저임금 산입범위 재산정, 근로시간 단축과 함께 연계돼야 할 탄력근로제 등은 죄다 뒤로 밀려나고 있다.
정부가 생명·안전 등의 분야를 ‘규제 샌드박스’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것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제기돼온 의료산업 등 서비스업 선진화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용후 핵연료 등 고준위 폐기물 로드맵을 다시 공론화에 부치겠다는 것 역시 다음 정권으로 넘기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국가의사결정 시스템이 고장나지 않고서야 이런 ‘폭탄 돌리기’가 횡행할 수 없다.
정부가 국가 미래를 생각하면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시민단체 반발이 예상된다거나, 기득권의 저항이 무섭다는 이유로 몸을 사리는 것도 매한가지다. ‘21세기 석유’로 불리는 개인정보 데이터의 활용 문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 및 직업훈련 개혁 등이 그렇다. 이를 미루는 건 미래산업 경쟁력, 미래세대 일자리를 포기하는 행위다. 이무도 책임지지 않는 ‘님트’는 ‘핌투’보다 더 심각하다. 핌투가 ‘정권 실패’로 이어진다면 님트는 ‘국가 실패’로 귀결된다. 분명한 건 모든 실패의 고통이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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