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美, 경기회복에 시장 선점하려 통상전쟁 일으켜

입력 2018-03-27 17:51  

美·中 통상전쟁 어떻게 읽어야 하나

40년 전 美·日 통상분쟁의 재판…슈퍼 301조 부활
기술 혁신의 부재가 공급과잉 초래…수요 부족도 원인
對中 수출 줄 수 있지만 또 다른 기회 열릴 수도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 오춘호 기자 ] 이상한 무역전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국 당국자들은 당장 엄청난 관세 폭탄과 무역 규제를 취할 것처럼 독설을 뿜어내지만 정작 철강 관세 등 일부 조치 말고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주가는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무역전쟁에 있을 법한 유가나 환율 변동도 찾아 볼 수 없다. 일부에서는 30년 전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미·일 통상마찰 양상과 비교한다. 주목되는 것은 10년간 쌓인 공급 과잉이 통상전쟁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기술 혁신의 부재와 수요 감소로 불어닥친 공급 과잉이다. 정작 미국은 지난해부터 투자가 다시 일어나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조업 혁신의 시기를 맞고 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통상전쟁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부과한 25%의 철강 관세가 발효된 23일 이후 미국 주식은 미세 조정을 보이는 정도에 그쳤다. 중국 상품 500억달러어치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것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환율도 마찬가지였다. 위안화는 달러당 6.2816위안으로 발효 시점 대비 가치가 불과 0.56% 상승했을 뿐이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에도 큰 변동이 없었다. 그만큼 시장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 축소를 언급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무역전쟁이라는 느낌이 있다. 정작 트럼프의 무역정책을 이끌고 있는 윌버 로스 상무장관이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들은 이전 미국의 통상전쟁을 이끈 백전노장이다.

레이건 시대의 재판인가

특히 라이트하이저는 40년 전 미·일 자동차 분쟁과 반도체 분쟁을 이끈 인물이다. 그가 중국과의 협상을 지휘하는 것을 두고 마치 “(1980년대 영화인) ‘백투더퓨처’를 보는 느낌”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당시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은 미국에 대한 자동차 선적을 제한하기 위해 ‘자발적 수출제한 조치’에 합의했다. 이런 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건설했다. 미국은 한걸음 나아가 1995년 미·일 포괄경제협의체를 구성했다. 일본을 상대로 한 강경한 접근이 성공한 것이다. 이 협상의 주역이 바로 라이트하이저다.

그는 10년 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보호무역 정책은 부유한 중산층과 함께하는 부강하고 독립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힘”이라고 했다. 그가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미국의 슈퍼 301조를 다시 꺼내 들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면서 거의 사라졌던 통상 무기다.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 문제가 된 철강은 대표적인 공급 과잉 품목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에서 생산된 철강은 16억7000만t에 이르렀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7억t이 남아돌았다. 중국 철강업계의 생산이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은 연간 3000만t이다. 그러나 철강 생산량 증가보다 공급 과잉을 일으킨 요인은 철강 수요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데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설비 가동률은 평균 80%를 밑돌았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90%를 넘나들던 가동률이다. 금융위기 전 노동생산성은 연평균 3%씩 상승했지만 위기 이후인 2011~2017년 생산성은 연평균 0.7%로 4배 이상 둔화했다. 판매 대비 제조업 재고율 또한 2014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본격 혁신 사라져

상품 개발이 기술 혁신과 제품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기존 상품을 개량하거나 개선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상품의 공급 과잉과 저가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은 “미국의 성장은 끝났다”는 극단적인 지적을 한다.

통상전쟁의 원인을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이 아니라 미래 시장을 선점하려는 미국 업계의 의도로 분석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더 얻고 있다. 무역전쟁은 투자 증가와 수요 회복 시점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도 미국 철강업계는 경기 호황에 따른 철강 소비 증가 호기를 수입 철강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선제적(preemptive) 공격을 해야 한다고 정부에 강력히 주장해 통상 분쟁을 일으켰다.

투자 늘 때 철강 통상분쟁?

지금 미국 철강업계는 그때와 같은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은 설비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수출 주문량이 7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실업률은 최저를 유지하고 디지털산업도 세계를 이끌고 있다. 셰일가스 확대에 따른 새로운 에너지혁명도 분출하고 있다. 이 같은 투자 증가는 기존 시장 수요를 늘리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철강만 해도 이런 산업 팽창에 맞게 수요가 대폭 늘고 있다. 지난해 수입된 철강 수요만 전년 대비 30% 늘었다. 이런 시장을 미국 철강업계가 선점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미·중 통상분쟁으로 한국이 받는 타격은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대로 50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미국의 대(對)중국 수입이 10% 감소하면 한국의 수출은 282억6000만달러(약 30조4925억원) 감소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0.6%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에 직접적인 타격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낙관론자들도 있다. 30년 전 미·일 반도체 분쟁과 자동차 분쟁으로 한국이 이득을 본 적이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 중국산 타이어에 최고 35%의 수입 관세를 부과했지만 오히려 한국 타이어업계가 상대적으로 이익을 봤다. 오바마 정부는 그 뒤로는 중국에 대한 무역제재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고래싸움에 새우 vs 오히려 기회

지금 글로벌 경제는 갈수록 복잡성을 더해가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세계적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각국의 보호무역은 갈수록 점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국제 교역은 갈수록 늘어 매월 기록을 경신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9%로 예측하고 있다. 미묘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통상전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속은 가을에 치러질 미국 중간선거로 꽉 차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물론 있다. 세계적 경기 회복과 패러다임 시프트에서 전개되는 통상전쟁이다. 단순히 트럼프의 선거용이라는 분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사안이다. 통상전쟁은 이해득실을 꼬치꼬치 따져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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