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살인사건, 18년 만에 진범 단죄했지만… '지연된 정의'가 망친 소년 인생, 누구 책임?

입력 2018-03-27 18:17   수정 2018-03-28 06:12

대법, 진범에 징역 15년 확정


[ 성수영/이상엽 기자 ]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 전북 익산시 약촌오거리. 버스정류장 앞에서 택시기사 유모씨(당시 42)가 흉기에 찔린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배달 일을 하던 소년 최모씨(34·당시 16)가 곧바로 범인으로 지목됐다.

최초 목격자라는 이유에서였다. 경찰은 최씨를 폭행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강압수사를 펼쳐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날림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대로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고, 법원도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최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었다.

경찰과 사법부의 터무니없는 오판으로 무고한 소년의 인생을 망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실이 18년이 지나서야 온전히 드러났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27일 강도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진범 김모씨(37)의 상고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수사기관 특유의 ‘경직된 조직 논리’가 이 같은 비극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조직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2003년 최씨의 누명을 스스로 벗길 기회를 걷어차기도 했다.

경찰이 진범인 김씨와 그의 친구 임모씨의 자백을 받아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이 “구체적 물증이 부족하다”며 기각한 것. 검찰은 흉기를 찾기 위해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도 반려했다. 풀려난 김씨와 임씨는 진술을 번복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이후 개명한 뒤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잘못을 인정하면 조직에 해를 끼친다는 검찰 특유의 인식이 잘 드러난 사례”라고 꼬집었다.

이후에도 사건 책임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사건 담당 판·검사들은 요직을 거쳐 은퇴한 뒤 유명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검찰과 법원 측도 이들이 이미 은퇴한 데다 판결 내용과 관련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수사반장을 비롯한 경찰 관계자들도 별다른 징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수사팀 막내였던 박모 경위만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2016년 만 44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최씨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국가로부터 형사보상금 8억4000여만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심에서 최씨를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최씨가 어린 나이에 오랫동안 수감생활을 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데 크게 기여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강력반장(64)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소문도 경찰 내부에 파다하다. 한 경찰 관계자는 “황 전 반장이 지구대를 전전하며 인사상 불이익을 받다가 퇴직했다”고 전했다.

성수영/이상엽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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