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스티븐 호킹이 타계했을 때 그의 책을 찾는 주문이 쏟아졌다. 대표 저서 《시간의 역사》는 이틀 새 1200부나 팔렸다. 출판사는 재고가 바닥나자 부랴부랴 증쇄에 돌입했다. 이 책은 우주와 물질,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우주과학서다. 1988년 초판 발간 후 전 세계에서 100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미국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100명 중 6명 정도에 불과하다. 엘렌버그는 전자책 단말기 킨들의 온라인 통계와 각종 자료를 활용해 ‘잘 읽히지 않는 책’을 가려냈다. 그 결과 《시간의 역사》를 구입한 사람이 1000만 명 이상인데도 완독한 독자는 6.6%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성 높은 책일수록 완독률 낮아
그가 여기에서 착안해 개발한 것이 ‘호킹 지수(Hawking index)’다. 어떤 책을 구매한 뒤 끝까지 읽었는지 여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낮은 지수는 중도에 책을 덮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두 번째로 꼽은 ‘읽지 않는 책’은 자본주의와 불평등 문제를 거론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으로 2.4에 그쳤다. 이보다 더한 책은 힐러리 클린턴의 비망록 《힘든 선택들》로 1.9였다. 모두가 남들 따라 구입했다가 몇 쪽도 못 읽고 팽개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출판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어떤 청바지가 유행한다면 너도나도 추종 구매에 나선다. 얼마 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전국을 휩쓴 ‘패딩 열풍’도 그런 사례다. 왜 이런 일이 빚어지는 것일까.
경제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를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로 해석하곤 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유행 따라 충동적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발표한 ‘네트워크 효과’의 하나로 서부 개척시대 역마차 밴드왜건(악대차·樂隊車)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밴드왜건이 악대를 앞세우고 요란한 음악으로 군중을 모으며 금광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하면 이에 솔깃한 사람들이 마구 몰려갔다. 그래서 ‘편승효과’라고도 부른다. 기업에서는 마케팅에 활용하고, 정치에서는 선거 유세 등 선전도구로 사용한다.
‘밴드왜건’ 휘둘리면 본질 못 봐
밴드왜건이 선거 유세에 처음 등장한 것은 1848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였다. 휘그당 후보였던 재커리 테일러의 열성 지지자 중 서커스단 소유자와 광대가 있었다. 이들을 앞세운 ‘밴드 유세’ 덕분에 테일러가 12대 대통령이 되자 밴드왜건은 정치권 전체로 퍼졌다. 이후에는 대중이 투표나 여론조사 등에서 뚜렷한 주관 없이 대세를 따르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쓰였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사회적 갈등이 심할수록 밴드왜건의 파장은 커진다. 이분법적 흑백논리와 편가르기식 대결이 기승을 부리는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부화뇌동에 휩쓸리면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이 설 자리를 잃는다.
호킹은 “고개를 들어 별을 보라. 숙여서 발을 보지 말라”고 했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한 말이다. 우리 존재의 뿌리인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의문을 가지라는 뜻이다. 그의 책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책꽂이에서 잠자는 동안 우리는 파편적인 지식과 편견, 세속의 욕망에 끊임없이 휘둘린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주 휘청거린다.
“지식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알고 있다는 착각”이라고 한 호킹의 지적을 되새기면서 새삼 나를 돌아본다. 나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내 삶의 ‘호킹 지수’는 얼마나 될까.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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