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외환개입 자제…문서화 막바지 단계"
韓, 펄쩍…"美의 연계요구 있었지만 거부
4월 환율보고서 발표 앞둔 통상적 협의"
환율MOU 체결땐 日처럼 '20년 불황' 불씨
[ 임도원/김은정 기자 ]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철강 관세와 함께 환율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협상 세부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환율협상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FTA 협상과의 연계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FTA 협상 결과와 함께 환율 협의를 공식 발표하면서 ‘연계돼 협의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FTA와의 연계 협의를 요구한 사실도 드러났다.
환율 협의 내용에 대해서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미국 백악관과 무역대표부(USTR)는 “외환시장 개입 억제를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이 마무리 단계”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반면 한국은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둔 통상적인 협의”라며 펄쩍 뛰고 있다.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억제를 MOU 등 문서로 약속한다면 미국이 엔화를 강제로 평가절상해 일본 경제불황을 촉발한 1985년 플라자합의의 ‘한국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재부, FTA 연계 아니라지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9일 “이번 FTA 개정 협상에서 미국이 처음에 환율 문제와 연계하려고 시도했지만 환율은 민감한 문제여서 ‘국민 감정상 FTA와의 연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며 “실물 분야인 FTA와 환율을 연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 백악관과 USTR은 이날 양국 협상 결과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에서 “무역과 투자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촉진하기 위해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도 “한국과의 협상은 철강과 외환, FTA 세 분야에서 이뤄졌다”며 “세 분야 협상이 타결된 역사적으로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치켜세웠다.
일각에선 형식적으로는 FTA 협상과 별개로 환율 협의를 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전체 협상의 한 틀(패키지 딜)로 진행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철강 관세 면제를 얻어내는 대신 자동차 분야뿐만 아니라 무역수지와 직결되는 환율 문제에 대해서도 양보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자국 수출업체의 약진을 위해 지속적으로 달러화 약세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협상 결과 부풀리기?
협의 내용도 ‘미스터리’다. “양해각서 체결이 마무리 단계”라는 백악관과 USTR의 발표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상호 이해를 같이했다는 차원의 이야기일 것”이라며 “미국이 FTA 타결에서 성과를 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렇게 발표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내용이 발표된 데 대해 미국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기재부는 그러나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협의가 진행됐으며, 협의 결과가 양해각서 등 문서 형태로 작성될 여지에 대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는 “4월 발표되는 미국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 않기 위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검토 중”이라며 “(외환시장 개입 금지에 대해) 서로 약속을 할지, 문서로 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달리 환율 문제에 소극적이고 불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FTA 협상 결과와 함께 당연히 환율 협의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플라자 합의’ 우려
한국이 미국에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양해각서를 맺으면 ‘환율 주권’에 대한 전례없는 침해가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으로도 ‘플라자합의’와 같은 다자 간 협상이 아닌 양자 간 협상에서 환율정책을 다룬 사례는 없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제2의 플라자합의’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5개국 재무장관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미 달러화 대비 엔화와 마르크 가치를 대폭 평가절상하기로 합의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일본은 플라자합의 후 엔화 가치가 폭등해 수출이 둔화하면서 ‘20년 경제 불황’을 겪게 됐다”며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 통제를 받으면 과거 플라자합의 정도는 아닐지라도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가 환율조작이 없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내세워 당당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은정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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