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디지털 혁명의 미래는 산업혁명과 닮은 꼴

입력 2018-03-29 18:38  

노동의 미래

라이언 아벤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360쪽 / 2만원



[ 최종석 기자 ] 1990년대 말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지역에는 대규모 디지털 경제 붐이 일었다. 기술자, 기업가, 전문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주식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 앞에 기회가 펼쳐졌다. 닷컴 열풍이 곧 가라앉으면서 많은 온라인 기업이 사라지긴 했지만 시스코시스템즈, 오라클, 구글 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업이 미국 경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기술 열풍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집단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기술에 투자한 대형 투자사?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 창업한 기업가? 아니면 월급 이외 보수로 스톡옵션을 받은 근로자? 정답은 지주와 건물주였다. 세계 곳곳에서 투자자와 기술자들이 몰려들어 돈과 노동력은 그다지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한된 주거지와 사무실을 놓고 모두가 경쟁했다. 수년간 임금이 40% 오르는 동안 주택가격은 두 배로 뛰었다.

주택 소유주가 기술 붐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된 이유는 주택의 희소성이 컸기 때문이다. 희소성은 인간 경제활동의 근본 요소다. 제한된 자원을 놓고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희소한 자원일 때는 성장의 과실에서 많은 몫을 노동자가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노동력의 희소성을 점점 약화시키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수석편집자이자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인 라이언 아벤트는 《노동의 미래》에서 자동화, 기계화로 위협받는 일자리와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고 신기술이 창출할 사회적 부는 과연 어떤 이들이 갖게 될 것인가를 분석한다. 기술 진보가 인간의 삶을 연장시키고 개선하고 풍요롭게 할 것은 분명하다. 새롭고 더 나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게 되지만, 이에 대한 구매력은 여전히 일자리에 의존한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은 인간 노동에 세 가지 방식으로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첫째는 자동화로 단순 노동에서 운전, 법무, 기사 작성까지 많은 인력을 대체할 것이 자명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화를 통해 수많은 기업이 생산을 전 세계로 분산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늘어난 일자리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 셋째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가의 생산성이 더욱 높아져 많은 인력이 가능했던 일을 소수가 수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력 과잉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한다. 불만과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이 권력과 부에 대한 재분배를 강하게 요구해 결국 급진주의가 글로벌 정치에서 점점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디지털 혁명이 산업혁명의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한다. 18~19세기 산업혁명의 전개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고 불평등이 문제가 되며 자본주의의 멸망을 예측하는 공산주의 이념을 낳게 했다. 하지만 보편적 교육, 사회복지, 의료, 인프라 구축 등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국가의 광범위한 역할을 정립했다. 고통스러운 정치적 변화의 시기를 겪은 뒤에야 새로운 기술의 결실을 공유할 장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도 결국 변화를 통해 광범위한 규모로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길을 걸을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인류가 기술 혁명을 창조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그 기술의 결실을 분배할 방법도 창의적으로 찾아낼 것이라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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