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부활의 비결'
마른 수건 쥐어짠 소니
'만성 적자' 카메라 등 1만명 감원
연공서열 방식 인사 시스템 없애
미래 먹거리 투자에 집중
양적 경쟁 대신 TV 수익성 개선
한·중 제치고 프리미엄TV 1위
일각선 "여전히 추종자" 비판도
[ 김동욱/박상익 기자 ] “글로벌 시장에서 소니의 위상은 20년 전에 못 미친다. 소니는 여전히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난달 2일 일본 도쿄의 소니 본사에서 열린 2017회계연도 3분기(2017년 10~12월) 실적 설명회에서 차기 최고경영자(CEO)로 내정된 요시다 겐이치로 최고재무책임자(CFO)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한때 ‘쇠락하는 기업의 대명사’로까지 불리던 소니를 되살린 주역으로 평가받는 요시다 CEO의 첫 일성은 ‘긴장을 유지하자’는 것이었다. 1일 출범한 소니 ‘요시다호(號)’의 행보에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8개 사업부문 모두 약진
신중하기로 소문난 일본 언론들이지만 요즘은 ‘소니 부활’이란 표현을 심심찮게 쓴다. 관료주의적 무능 탓에 일본을 대표하는 초우량 기업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던 소니가 지난해부터 부쩍 달라진 실적을 거두고 있는 것에 대한 평가다.
소니의 경영실적 성적표는 화려하다. 2017회계연도(2017년 4월~2018년 3월)에 7200억엔(약 7조2538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썼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년 전인 2008년 2278억엔(약 2조2918억원) 적자를 봤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플레이스테이션(게임기)이 처음 출시된 1998년(5260억엔) 실적을 훌쩍 뛰어넘는다.
소니를 지탱하는 4대 축인 게임·반도체·금융·음악 사업이 모두 영업이익 1000억엔을 웃돈 것으로 점쳐지는 등 기업 체질도 골고루 좋아졌다. 주력 사업을 포함한 8개 사업부문 모두 흑자가 예상된다. 플레이스테이션4 판매가 호조를 보인 게임부문이 1800억엔(약 1조8109억원)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보이고 금융(1750억엔), 반도체(1550억엔), 음악(1100억엔) 등에서도 각각 1000억엔 넘는 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한때 골칫거리였던 TV 오디오 등 음향·영상(AV)사업 이익도 800억엔을 웃돈 것으로 전망된다. 카메라부문(720억엔) 수익도 쏠쏠하다.
이익의 질도 좋아졌다. 2017년 4~12월 소니의 매출 영업이익률은 약 11%로, 최대 이익을 거둔 1997년(8%)보다도 높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2500달러(약 267만원) 이상 TV 시장에서 소니는 36.9%의 점유율로 LG전자(33.0%)와 삼성전자(18.5%)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선택과 집중 위한 구조조정
위기에 빠진 소니가 부활한 바탕에는 히라이 가즈오 전 CEO와 요시다 현 CEO가 주도한 선택과 집중을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깔려 있다. 2012년 히라이 당시 CEO는 빌딩과 보유주식 등 유휴자산부터 매각했다. 하워드 스트링거 전 CEO가 신규 사업을 벌이다 “초우량 기업이 몰락하는 데 10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혹평을 들은 것과 정반대 행보였다.
적자를 이어가던 AV, 카메라, 스마트폰, 게임, PC 관련 사업을 중심으로 1만 명을 구조조정했고 연공서열 방식 인사 시스템도 대대적으로 손봤다. 연간 870만 대의 노트북을 판매하던 PC사업부문 ‘바이오(VAIO)’도 팔았다. 2014년 9월에는 상장 70년 만에 처음으로 무배당을 결정하기도 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는’ 과정에서도 스마트폰용 이미지 센서 등 차세대 먹거리에는 과감하게 투자했다. 일본 경제주간 닛케이비즈니스는 1980년대 거칠 것 없이 질주한 일본 경제 성공의 비결로 꼽혔던 ‘경·박·단·소(輕薄短小)’전략을 21세기에 맞게 적용한 것을 소니 부활의 비결로 꼽았다. 뼈를 깎는 구조개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볍게 했고(輕), 부서 간·사업 간 벽을 줄였다(薄)는 것이다. 또 고부가가치 고급 제품에 집중해 재고 회전일수를 줄였고(短), 자본을 적게 투입(小)하고도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도록 체질을 개선했다는 설명이다.
◆승부수는 프리미엄 전략
소니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방책은 ‘고부가가치 노선’이었다. “양적 경쟁으로는 한국이나 중국 업체를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생존의 길을 ‘양적 경쟁’이 아니라 ‘프리미엄화’와 ‘차별화’에서 찾았다.
일본 언론이 ‘프리미엄 시프트’라고 명명한 이 같은 전략이 가장 잘 드러난 사업이 TV다. 2004년부터 누적 적자가 8000억엔(약 8조484억원)에 달한 분야다. 개혁에 들어간 소니는 삼성전자와 맺고 있던 LCD 패널 합작사업에서 철수했다. 판매량을 중시하지 않는 쪽으로 사업전략을 수정하면서 4K TV 등 고가 초고화질 제품과 51인치 이상 프리미엄 TV에 집중했다. 소니 TV의 대당 평균 단가는 2013년 말 4만3000엔(약 43만2600원)에서 지난해 7만엔(약 70만4200원)대 초반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소니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1위에 올랐다.
디지털카메라 사업부문도 고급 기종 판매에 집중해 효과를 보고 있다. 수익성이 좋은 소수의 고가 제품에 집중해 ‘재고조사자산 회전일수’를 1997년 64일에서 2011년 40일, 2017년 31일로 단축했다. 소니의 ‘프리미엄 시프트’ 전략과 관련해 이다 다카시 소니 CSR부 시니어매니저는 “소니 전 직원이 합심해 경쟁 업체와는 차원이 다른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을 만들어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껏 달라진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 같은 변화상이 반영된 까닭인지 소니는 지난달 27일 15년 만에 기본급을 5%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실적 개선으로 회복된 소니의 자신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박상익 기자 kimd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