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업비밀도 공개하라면 누가 이 땅에서 기업하겠나

입력 2018-04-04 17:20  

반도체 공장 산업재해를 둘러싼 논란이 합당한 정보공개를 넘어 기업의 영업비밀까지 위협하는 사태로 번져가는 것은 심히 우려스럽다. 고용노동부가 탕정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 이어 기흥·화성·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결정한 것이 그렇다. 고용부는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이 삼성전자 온양공장 보고서의 영업비밀성을 인정하지 않은 데 따른 후속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이렇게 되면 반도체 후공정은 물론 전공정, 디스플레이까지 생산기술이 줄줄이 노출될 판이다.

고용부가 삼성 공장 보고서를 공개하며 산재 피해 당사자도 아닌 한 방송사 PD에게 넘기기로 한 자료만 해도 그렇다. 여기에는 기흥·화성의 D램 및 낸드플래시, 시스템 반도체 관련 내용은 물론 최신 설비인 평택 3D낸드 공장 정보가 들어있다. 고용부는 “법원 판결로 공익을 위한 용도라면 누구에게든 넘길 수 있게 됐다”고 말하지만 궁색하기 짝이 없다. 기술유출 우려가 있다며 기업에 해외투자까지 재고해 달라던 정부가 국내 생산라인 핵심 정보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공의 정보로 만드는 꼴이다. 그동안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거부하며 시민단체와 소송을 벌여오던 고용부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면 기업은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하는가.

고용부가 이의신청에도 보고서 공개를 밀어붙이자 해당 기업은 마지막으로 행정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는 작업장 내 대기 환경분석 내용, 사용 화학물질 종류, 인력 운용 정보 등 산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제공하겠다고 한다. 다만 경쟁사로 넘어갔을 때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초래할 정보만 제외해 달라는 게 기업의 요구다.

행정 소송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실제 보고서 공개로 이어지면 그렇지 않아도 중국 등이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그 파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기술유출 리스크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영업비밀 보호가 안 되는 기업환경으로 치닫게 되면 이 땅에서 더는 첨단공장을 보기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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