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500억弗 규모 중국 첨단제품에 25% 관세
반도체·의료기기·전기차 등 1333개 품목 겨냥
中 "美, 자살행위…그대로 되갚아주겠다"
양국, 파국 피하기 위해 '물밑조율' 할 수도
[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기자 ]
미국과 중국의 통상전쟁이 국가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철강과 알루미늄에 높은 관세를 때리자 중국이 농산물 고율 관세로 대응하고, 미국이 다시 중국산 첨단 제품에 뭉텅이 관세를 매기자 중국이 즉각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는 식이다.
미·중 양국이 미래 세계 경제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장기집권 기반을 다지는 강력한 리더십 확보를 위해 통상전쟁을 이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한쪽이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양국의 관세 부과로 입는 피해 규모 자체보다는 이 싸움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더 빨라지고 격렬해진 싸움
미 무역대표부(USTR)가 3일(현지시간) 25% 관세를 부과할 1333개 중국산 수입 품목을 발표한 것은 당초 예상(6일)보다 사흘 빠르다. 중국이 지난 2일(미국시간 1일)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맞서 미국산 농산물에 최대 25%의 관세를 매긴 조치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많다. 그러자 중국은 미국의 조치가 나온 지 반나절 만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중 간 교전 템포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관세 부과 규모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약 40년 만에 가장 크다고 전했다. 미국은 대(對)중국 무역적자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매긴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보복 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을 겨냥한 대미국 투자제한 조치 등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이달 중순 재무부를 통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USTR이 선택한 1333개 품목은 대부분 중국의 제조업 육성계획인 ‘중국 제조 2025’의 10대 핵심 업종에 포함돼 있다. 미국이 중국의 차세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산업을 건드린 것이다. 미국은 중국 제조 2025에 대해 “중국 정부가 탈취한 기술과 정보로 신산업을 키워 미국을 뛰어넘으려는(leapfrog) 전략”이라고 경계하고 있다.
◆中도 美 핵심 수출품 직접 겨냥
중국은 즉각 보복에 나섰다. 미국의 조치에 “동등한 규모와 강도로 보복하겠다”고 공언한 대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14종류 106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지난해 미국에서 수입한 이들 품목의 규모는 500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콩과 자동차, 항공기 등을 정조준했다. 콩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미국 중부 농업지대의 대표 작물이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으로부터 3000만t(약 100억달러어치)의 콩을 수입했다. 이는 전체 미국 콩 수출의 57%를 차지한다.
중국은 또 미국산 자동차의 두 번째 소비 시장이다. 지난해 106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자동차를 수입해 캐나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항공기 역시 중국이 미국산 여객기의 최대 시장이다. 작년 보잉이 인도한 항공기의 26%(202대)를 중국이 가져갔다. 중국 상무부가 공개한 관세 부과 품목에는 이외에도 옥수수, 옥수수 분말, 수수, 소고기, 미가공 면화, 담배 등 농산물이 대거 포함됐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가오펑 상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행위는 WTO 기본 원칙과 정신을 위반했다”며 “WTO 분쟁 해결 절차에 따라 제소하겠다”고 말했다.
◆므누신-류허 물밑 협의 가능성
양국이 겉으로는 일전불사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지만 전격적인 물밑 타협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이날 관세 부과 품목을 발표했지만 실제 부과는 내달 22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결정하기로 했다. 중국 역시 미국의 상황을 지켜본 뒤 관세 부과 시행 시기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WSJ는 중국 경제 사령탑인 류허 부총리가 최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활발한 서신 교환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므누신 장관도 류 부총리 면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박수진/베이징=강동균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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