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일 혈액종양내과 교수
[ 이지현 기자 ] “혈액암 환자를 치료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고진감래입니다. 혈액암 치료는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비교적 많은 환자가 완치할 수 있기 때문이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사진)는 “혈액암은 말기라도 완치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며 “완치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혈액암은 크게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 골수종으로 나뉜다. 고 교수는 이 중 림프종과 다발성 골수종 환자를 주로 치료한다. 고 교수는 환자와 충분히 상의해 각 환자의 상황에 맞는 치료법을 제시하는 의사로 유명하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환자들이 있을 정도로 호응도 높다.
혈액암은 특정한 부위에 종양이 생기는 다른 암과 다르다. 암이 생기는 혈액과 림프계가 전신에 분포하기 때문이다. 몸 전체에 암이 퍼진 환자가 위암, 폐암, 간암 등으로 진단받으면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지만 혈액암은 얘기가 다르다. 말기 암으로 불리는 4기 판정을 받아도 완치 가능성이 높다. 혈액암은 주로 피를 만드는 공장인 골수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림프종은 림프가 모이는 림프절에 문제가 생겨 암세포가 퍼진다. 암 초기부터 전신에 퍼지기 때문에 암세포가 얼마나 많은지, 공격성은 어떤지를 토대로 병기를 구분한다. 암세포가 어떤 유전 변이를 가졌는지도 치료 결과를 예측하는 척도다.
항암제를 강하게 쓸수록 암세포도 잘 죽는다. 이 때문에 고용량 항암치료를 주로 한다. 그만큼 치료 부담이 크다. 2010년 이후 혈액암 항암제가 많이 개발돼 항암제 부작용도 이전보다는 줄었다. 항암제만으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는 세포치료를 한다. 조혈모세포이식이 대표적이다. 젊은 다발성 골수종 환자라면 누구나 이 치료를 받는다. 나이 많은 환자라도 체력이 버틸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급적 조혈모세포이식을 권장한다.
조혈모세포이식은 항암제, 방사선 치료를 통해 환자 몸 속 골수의 지저분한 세포를 없앤 뒤 다른 사람의 세포를 이식해 자라도록 돕는 것이다. 이때 환자는 고용량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고통이 비교적 크다. 부작용 위험도 높다. 다른 감염이 생기거나 간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기도 한다. 상피세포가 떨어져 나가 점막염 등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에는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이 같은 부작용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다. 환자 상태에 따라 부작용을 줄이도록 약을 적절히 배합하고 용량을 조절한다. 환자의 경제 사정에 따라 쓸 수 있는 치료약도 달리 선택해야 한다. 고 교수는 “조혈모세포이식은 수술은 아니지만 이를 관리하는 모든 과정은 집도의가 수술하는 것과 같다”며 “나쁜 세포를 죽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할지, 언제 투여할지,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했다.
혈액암 환자 치료성적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00년대까지 다발성 골수종 환자 생존율은 50%에도 못 미쳤지만 최근에는 5년 생존율이 60~70%에 육박한다.
고 교수는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항목에 포함되지 않아 쓸 수 없는 약이 꽤 많다”며 “혈액암은 완치된 뒤 사회로 복귀하는 환자가 많기 때문에 건강보험 혜택을 좀 더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 스스로 임상시험에 대한 부담감을 더는 것도 중요하다. 그는 “신약 치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임상시험이 많다”며 “임상에 참여하는 것이 환자에게는 좋은 치료 기회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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