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마찰 빌미 되고 국내 기업 역차별도 우려
대기업·소상공인 대결구도는 우리 삶 해칠 뿐
최준선 <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여당 의원이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상시근로자 5~10인 미만 소상공인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들이 생계를 영위하기에 적합한 업종을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법안의 의도는 좋으나 이미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제도’가 운영 중이다. 또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 관리 아래 민간 차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도 폐지될 것은 아니기 때문에 3중 규제에 옥상옥(屋上屋)이다. 부작용이 많아 이미 폐지된 ‘고유업종제도’의 부활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얼마 전 공청회까지 마친 상태고,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겨냥한다면 4월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법안에는 ‘생계형 적합업종’에 대한 정의 규정이 없다. 영업 자유를 침해하는 행정규제법인데도 규제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 이는 규제를 위한 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에 어긋난다. 지정 대상 업종에도 제한이 없어 대기업이 운영하는 전 업종이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될 수도 있다. 골목상권에서 거래되는 완제품과 중간재 중에 대기업 생산 또는 관련 품목 아닌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기업은 대리운전, 카풀, 숙박 예약, 의료서비스, 유통 등 4차 산업 융·복합 업종까지 영업이 금지되고, 대기업 계열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예컨대 펫(애완동물) 관련 품목, 담배, 도시락, 전통 떡, 청국장 등 거의 모든 품목을 판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권은 심각하게 침해된다. 똑같은 영세사업주인 편의점 점주는 안 그래도 최저임금 확보 때문에 허덕이다 못해 이젠 아예 장사를 접어야 할 지경에 몰릴 수 있다.
둘째, 대상 업종 지정 신청자격에 제한이 없어 소상공인 1명이라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무차별적 민원 제기로 제도 남용의 우려가 크다. 매년 6월, 15명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사실상 심의·지정하는 전권을 행사하기에도 역부족일 것이다. 위원회 구성도 법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규제를 받는 쪽인 대기업은 항변할 기회조차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셋째, 실제로 소상공인의 사업 영역에서 가장 널리 충돌하는 것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다. 예를 들어 더본코리아는 중소기업으로 출발해 중국집, 쌈밥집, 돼지고기집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 영역에 빠르게 진출해왔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은 규제에서 빠진다. 오히려 대기업 계열사의 증가 원인은 수직계열화와 사업 재편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모회사와 같은 업종인 경우가 많다. 법률상 규제 대상 설정에 간극이 있어 실효성이 의문이다.
넷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에 사업 철수·축소 등의 권고를 명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명령을 위반하면 2년 이하 징역과 1억5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돼 있고, 양벌규정에 따라 위법행위자, 사업주 및 법인까지 처벌된다. 사업 철수 권고에도 불구하고 적합업종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 매출의 10% 이내에서 소상공인 육성 부담금을 부과할 수 있고, 대기업이 사업 인수, 개시, 확장금지명령을 위반할 경우 매출의 30% 이내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중기적합업종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하고 과도한 처벌이다.
다섯째, 현재 중기적합업종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와는 달리 심의위원회는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정부 조직으로서 생계형 적합업종은 정부가 직접 규제하겠다는 것인데, 정부의 영업 규제는 통상마찰을 불러올 소지가 매우 크다. 떡볶이집, 순대집은 살리고 자동차, 반도체는 내줘야 할 처지가 될 수도 있다.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경우처럼 대기업이 철수한 시장을 오스람, 제너럴일렉트릭(GE), 중국산 제품이 차지해 국내 기업만 역차별당한 사례가 재발할 수도 있다.
가장 큰 해악은 신산업 발전이 저해된다는 점이다. 4차 산업의 특징은 산업 간 융·복합이다.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대결 구도로 제도를 설계하면 산업경쟁력은 약화되고 미래의 먹거리인 4차 산업도, 신산업 창출도 다 물 건너간다. 과다한 입법은 개인의 삶과 자유를 침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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