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의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놓고 갈등 증폭
고용부 "산업보건학회가 공정비밀 없다고 결론"
"의료·보건 전문가들이 산업가치 판단 못해"
고용부 "공정별 모든 정보 공개해야 産災 입증"
"각 지점 대기환경 등 일부 자료만으로 가능"
[ 노경목/심은지 기자 ] 산업기술 유출 우려에도 고용노동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장은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결과보고서는 산업재해 입증에 꼭 필요하고 절실한 자료”라며 해당 자료의 공개와 관련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 2월 말 임명된 박 국장은 2011년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이끈 변호사 출신이다. 고용부는 지난달부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배터리까지 각종 공장의 공정 관련 노하우가 담긴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해 산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날 고용부의 해명이 얼마나 타당한지 쟁점별로 짚어봤다.
◆‘보고서’에 영업비밀 없나
박 국장은 “삼성이 말하는 영업비밀이라고 할 만한 정보는 보고서에 담겨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지난달 온양공장에 대한 대전고등법원 판결과 함께 한국산업보건학회의 의견을 들었다. 대전고법의 관련 내용 조회에 대해 산업보건학회가 “보고서만으로는 공정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추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자업계에서는 산업보건학회가 공정이나 노하우가 갖는 산업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학회의 이름 그대로 산업환경이 보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조직으로 각 공정의 가치를 판단할 역량이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회 구성원은 대부분 보건 및 의료 관련 대학 교수들로 채워져 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삼성 기술의 가치를 판단한다면서 나를 비롯한 반도체 전문가에게는 전화 한 통 없었다”며 “펄펄 뛰며 반대할 것을 아니 입맛에 맞는 사람들 말만 들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 공개해야 산재 입증되나
고용부는 보고서 중 ‘공정별 화학물질 사용상태’와 ‘측정 위치도’가 산재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특정 위치의 공정 담당자가 어떤 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산재 관련 소송에서 해당 자료 공개를 끝까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별 화학물질 사용상태를 통해서는 화학물질 배합비율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측정 위치도는 라인 배치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각 지점에서 측정한 대기 환경, 인력 운용 현황 등은 피해자와 재판부에 제출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장 근로자가 어떤 대기 환경에서 일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으면 산재 피해 입증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는 법원의 산재 피해 인정과 관계없이 기금 1000억원을 마련해 협력사 직원을 포함한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삼성이 피해자 측에 제공하는 정보는 미흡한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 국장은 “삼성 측이 어떤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이 어떤 자료를 공개하고 있는지 알아야 보고서 전체 공개가 합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제3자 공개’, 지방청이 알아서?
고용부가 보고서를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핵심 논란거리다. 고용부는 지난 3월 초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지침’을 개정하면서 “측정결과 보고서는 개인정보(근로자명)를 제외하고 모두 공개를 원칙으로 함”이라고 명시했다. 박 국장이 고용부에 출근하기 시작한 직후다.
이는 피해 당사자인 산재 근로자 및 유족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언론 등 제3자에게도 보고서를 공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동계 사정에 정통한 한 법학자는 “고법 판례를 사례로 제시하며 ‘이해 관련성을 불문하고’라는 내용의 문구를 집어넣은 것은 사실상 제3자에게도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이에 대해 “지침은 일선에서 사용하는 참고 자료일 뿐 사안별로 각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공개청구심의회에서 판단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지침이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게 일선 직원들의 목소리다. 한 지방청 관계자는 “중앙에서 지침이 내려오면 각 지방청은 따로 판단할 여지가 없다”며 “특히 측정결과보고서는 원칙 공개를 명시했기 때문에 이와 다르게 해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노경목/심은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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