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외환시장 개입 낱낱이 공개 요구… 환투기 세력 먹잇감 우려

입력 2018-04-10 19:41   수정 2018-04-1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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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조작국 지정' 무기로 한국 압박하는 미국

"매도·매수 금액과 시점 구체적 내역 공개하라"

외환당국, 美 요구에 난색
"시장 개입 효과 떨어져…수출기업 등에 부담될 것"

美 재무부 환율보고서에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 촉각



[ 이태훈 기자 ] 미국이 오는 15일께 각국에 대한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 정보공개 요구 수위를 높여 양국 간 벌어지는 환율 협상이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매달 공개하고 환율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달러 매입과 매수 금액 및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심각한 ‘환율 주권 침해’로 보고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한국을 몰아붙이고 있어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수입 철강에 25%의 추가 관세를 매기려는 목적으로 1962년 제정된 ‘무역확장법’을 적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對)미 무역흑자국을 공격하기 위해 1988년 만들어진 ‘종합무역법’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구체적 매수·매도 내역 공개 요구

미 재무부는 2016년부터 매년 4월과 10월 어느 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를 담은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올해 4월 보고서는 15일을 전후해 발표될 예정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은 “정부의 환율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최근까지 양자 간 협상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대부분 나라는 순매수·순매도 내역을 중앙은행 홈페이지 등에 공개하고 있다.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 내역이 얼마나 순증 또는 순감했는지만 밝힐 뿐 얼마를 사고팔았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한국 측에 순매수·순매도 내역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얼마를 매수하고 매도하는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의 요구에 외환당국은 난색을 보였고 15일 이전에 양국 간 환율 협상이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외환당국이 구체적인 매수·매도 내역을 공개하면 환투기 세력이 이와 반대로 움직여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당국의 시장 개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수출 기업 등에 부담이 될지 모른다.

환율조작국 지정되나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 전 한·미 환율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근거법은 2016년부터 시행 중인 교역촉진법이다. 이 법이 시행된 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아직 없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은 △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경상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연간 달러 순매수 GDP 대비 2% 초과 또는 12개월 중 8개월 이상 달러 순매수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지정된다.

한국은 2016년 이후 나온 네 차례 보고서에서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흑자 두 요건에 줄곧 해당됐다. 하지만 외환시장 개입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측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되살려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했듯 환율 문제에서는 종합무역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은 대미 무역흑자국을 사실상 모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게 해놨다. 한국은 이 법에 따라 1988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가 2년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중국과 대만도 1990년을 전후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래 요건상으로는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지만 미국이 기준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며 “외환당국이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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