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의 '환율 강공'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입력 2018-04-11 17:31  

미국이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재무부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강도로 한국 외환당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매달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달러 매입과 매도로 나눠 각각 금액과 시점까지도 모두 공개하라는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를 공개하라는 미국의 요구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공개 범위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분기 또는 월 단위로 공개하고 있지만 전체 매수와 매도 규모만 밝힐 뿐, 구체적 매매 내역까지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한국에는 유독 세세한 내역까지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환율주권 침해로 볼 소지도 있다.

미국이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무리한 요구를 하는 데는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이 마무리에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협상이 마무리됐다는 우리 정부의 발표와는 다른 얘기다. 지난달에는 “북한과 합의가 이뤄진 이후로 (한·미 FTA 협상 타결을) 미룰 수 있다”고도 했다. 한·미 FTA와 대북 문제는 별개가 아니며, 환율 협상도 마찬가지라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한국을 압박해 한·미 FTA에서 이득을 챙기고 대북 문제에서도 한·미 간 균열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보’와 ‘경제’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환율 관련 요구를 수용키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측 요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남북한,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이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양국 간 미묘한 갈등이 증폭되고 한·미 관계가 계속 삐걱댄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또 어떤 카드를 들고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안보와 경제는 별개”라는 정부 여당의 생각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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