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워라밸 좋지만… 주52시간, 누군가엔 '고통' 될 수도"

입력 2018-04-12 17:16   수정 2018-04-13 05:17

'저녁시간보다 저녁거리' 기사
반나절 안 돼 댓글 6천여건
임금감소 우려 목소리 많아

선의만으론 정책 성공 못 해
근로자 절절한 호소 귀기울여야

문혜정 중소기업부 기자



[ 문혜정 기자 ] 깜짝 놀랐다. 11일자 기사를 쓴 이후 벌어진 일 때문이다. 〈‘저녁 있는 삶’보다 ‘저녁거리 살 돈’이 중요…일 더 하게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는 10일 오후 6시 전후로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나갔다. 오는 7월부터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임금이 줄어 삶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 기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려진 하소연을 정리했다. 그저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했을 뿐인데, 기사가 나간 뒤 몇 시간 만에 댓글이 6400여 건 달렸다. 수십 통의 이메일도 받았다. 삶에 대한 논의에 독자들은 댓글과 이메일로 참여한 듯했다.

의견은 반반 정도였다. ‘기레기’라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가족과 함께 저녁도 먹지 못하는 야근이 일상화된 한국의 노동현실이 맞다는 말이냐”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시간 순위에서 멕시코와 1·2위를 다투는 걸 알고 하는 소리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공감하는 댓글 중 “우리 애 아빠도 알바 뛴다고 하더라. 누구를 위한 법인지” “원하는 사람만 제발”이라는 글을 봤을 때는 먹먹해지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직장맘으로서 근로시간 단축을 환영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의미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의 준말)도 한국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서 합의한 사안을 존중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누군가에겐 갑자기 강요된, 고통스러운 ‘악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주로 기업인의 하소연을 들을 때만 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오죽하면 해외로 공장을 옮기거나 공장 자동화를 통해 인력을 줄이려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로자들에게는 ‘절박’이란 단어가 더 적합한 듯하다. 당장 삶의 한 부분이 파괴되는 고통을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관료는 이런 말을 했다. “정책과 개혁이 성공하려면 물 흐르듯 가야 하고, 저항을 줄여야 제도가 안착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그런 면에서 뭔가 더 생각해 볼 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 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제도의 취지도 좋고, 기업 규모에 따라 법 적용 시기를 달리한 것은 기업과 근로자들을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 제도가 과거 있었던 근로시간 단축보다 훨씬 근본적 조치라 우리 사회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 아픔을 겪었던 국민들을 달래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가해자를 대신해 국가가 대신 사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물며 국민의 삶을 위한 제도를 시행하는 마당에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과 경제 혁신의 기회가 되는 동시에 국민의 삶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길 기대해본다.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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