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예진 기자 ] 한미약품은 속도전으로 성장한 회사다. 1999년 국내 제약업계 6위였던 한미약품은 5년 만에 3위로 올라섰다. 2000년 의약분업 이후 발 빠르게 병원 영업을 강화했고 특허 만료 의약품을 개량한 ‘퍼스트 제네릭’을 가장 먼저 출시한 것이 도약의 발판이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속도가 발목을 잡았다. 폐암 신약 ‘올리타’ 얘기다. 국산 신약 27호로 주목받았던 올리타는 한미약품이 개발을 중단하면서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됐다. 조건부 허가를 받고 환자들에게 처방되던 약물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건 유례 없는 일이다.
올리타의 실패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기술수출 무산, 늑장 공시, 임상 환자 사망 등으로 가뜩이나 논란의 중심에 섰던 약물이다. 한미약품은 경쟁사보다 개발 속도가 늦어 시장을 빼앗겼다고 말한다. 처음엔 경쟁사보다 앞섰지만 자금력, 인프라 부족으로 뒤처졌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다른 의견도 내놓고 있다. 무리하게 임상을 빨리 진행한 게 패인이라는 것이다.
단기간에 효과를 얻기 위해 고용량으로 허가받은 게 대표적이다. 한미약품은 올리타 800㎎으로 조건부 허가를 받았지만 이상반응이 나타나자 복용량을 낮춰 600㎎ 임상을 새로 신청했다. 허가 이후 점차 용량을 높여 안전성을 가늠하는 일반적인 임상과는 정반대다. 애초부터 적정 용량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경쟁사 아스트라제네카보다 먼저 혁신 신약으로 허가받기 위해 임상을 설계한 것도 무리수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상에 없던 치료제인 혁신 신약은 비교 대상이 없어 약을 복용한 환자와 복용하지 않은 환자를 비교한다. 이 때문에 임상에 참여하더라도 무작위 배정에 걸려 아예 약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경쟁 제품인 타그리소가 먼저 출시된 상황에서 치료 기회를 운에 맡기는 임상에 환자가 모일 리 없다.
속도로 승부하기엔 글로벌 제약사의 벽이 높다는 걸 올리타는 보여줬다. 신약 개발 경험과 노하우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기 위해선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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