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시대 곧 온다
인류의 난제들도 해결할 것
[ 설지연 기자 ]
‘인공지능은 어디에나 있다(AI on everywhere).’
지난달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GPU 테크놀로지 콘퍼런스(GTC) 2018’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55)가 내세운 슬로건이다. 황 CEO는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첫 번째 혁신”이라며 “2019년엔 운전자 없는 로봇택시가 승객을 실어 나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AI가 스스로 새로운 AI를 만드는 시대가 곧 닥칠 것이며 인류는 그동안 풀지 못했던 많은 문제를 AI를 통해 해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에 당장 운전자 없는 로봇택시가 돌아다닌다는 얘기가 마냥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가 현재 전 세계 자율주행차 개발의 핵심 기업을 이끄는 수장이기 때문이다.
◆GPU 업체로 출발… 지금은 AI 핵심기업
황 CEO가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는 처음엔 PC 게임 등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전용칩(GPU·그래픽 프로세서 유닛)을 만드는 회사였다.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무엇보다 그래픽카드 성능이 좋아야 한다. 엔비디아의 제품은 수많은 게이머의 욕구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황 CEO는 GPU 칩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엔비디아를 GPU 컴퓨팅 회사로 진화시켰다. PC 그래픽 칩을 만드는 기업에서 컴퓨팅까지 제공하는 회사로 성장하자 시장이 훨씬 커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엔비디아는 컴퓨팅의 중요한 응용프로그램인 AI 개발에 몰두했다. 수년 만에 AI 컴퓨팅 기업으로 새롭게 변신에 성공했다. 창업 25년 만에 미래 기술을 주도하는 기업이 된 것이다. 2016년 3월 엔비디아 주가는 35달러 수준이었다. 그 후 2년이 지난 2018년 4월 주가는 230달러대로 올랐다.
자율주행차가 발전을 거듭할수록 기업가치는 더욱 올라가고 있다. 자율주행차 성능에서 관건은 도로 위를 달리는 와중에 실시간으로 사람과 주변 장애물, 신호등 등을 인식해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다. 이미지 처리 기술에서 엔비디아의 GPU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구글을 비롯한 많은 세계적 기업으로부터 제휴 또는 협력 제의를 받고 있는 배경이다.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18’에서 엔비디아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전 세계에서 온 CEO들도 황 CEO를 만나기 위해 눈치작전을 펼칠 정도였다.
◆차별화된 기술로 수요 확장
황 CEO는 대만계 이민 2세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열 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왔다. 미국 오리건주립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LSI로직에서 엔지니어링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고, CPU 업체인 AMD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설계자로 일했다.
1993년 그의 나이 30세 때, 공동 창업자 두 명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엔비디아를 설립했다. 이후 지금까지 CEO로 일하고 있다. 1999년 개발한 GPU는 비주얼 컴퓨팅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엔비디아를 AI 선두주자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처음부터 승승장구했던 건 아니었다. 벤처캐피털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설립했지만 GPU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4년가량 고전을 거듭했다. 투자받은 자금이 거덜 나 회사가 존폐 위기에 몰릴 때도 있었다. 엔비디아에 대한 업계 평가는 ‘기술과 상품성은 좋지만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원하는 제품을 내놓기 위해 황 CEO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다 1997년 개발한 칩셋이 히트를 쳤다.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해 1999년엔 나스닥에 입성했다. 그해 엔비디아의 GPU 생산량은 1000만 개를 넘었다. 그리고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생산량 1억 개를 돌파했다. 세계 GPU 시장의 70~80%를 장악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지난해 말 엔비디아 주가가 폭등한 적이 있는데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때문이었다. 가상화폐 급등에 때아닌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이 나타났고 엔비디아의 성능 좋은 GPU는 비트코인 채굴에도 제격이었던 것이다.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의 확장성과 차별화야말로 엔비디아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여야”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은 지난해 황 CEO를 ‘올해의 기업인 20명’ 목록에 올렸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래리 페이지,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의 제프 베저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등 쟁쟁한 거물들을 제치고 포천의 표지를 장식했다. 포천은 “엔비디아는 10여 년 전 컴퓨팅의 미래를 예측해 AI 시대를 이끌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일반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인공지능)을 구동하는 신기하고 강력한 제품을 만드는 차별성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검은 오토바이 가죽재킷이다. 주요 행사 때마다 검은색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그는 “매년 아내가 사준 새 가죽재킷을 중요한 자리마다 입는다”고 말한다.
소통에도 능해 임직원과도 격의 없이 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황 CEO는 동료와 직원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실패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열매를 딸 수 있는 비결이다.” 엔비디아 제품의 탁월함 뒤에는 거듭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끈기와 용기를 바탕으로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리더십이 있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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