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현 기자 ] ‘사실로는 졌지만 마음으로는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지조….’
1956년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에 실린 이희승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의 일부다. 이해타산에만 밝고 물질주의에 젖은 현대인과 비교되는 가난한 선비 ‘남산골 샌님’을 이르는 표현이다. 좋게 말하면 비록 남루해도 지조 하나는 지켰다는 의미이지만, 거꾸로 보면 세상물정 모르는 고집불통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 논란 와중에 그 중심에 있는 고용노동부 처신을 지켜보면서 수필 ‘딸깍발이’가 떠올려지는 것은 왜일까. 고용부는 지난 2월 대전고등법원 판결 직후 산업재해 당사자뿐 아니라 제3자에게도 반도체 작업환경보고서를 적극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부의 논거는 “작업환경보고서가 영업비밀이라 보기 어렵고, 비밀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해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고법 판결이었다.
삼성전자는 화들짝 놀라 행정심판위원회와 법원으로 달려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국가핵심기술 여부를 묻는 판단도 구했다. 이후 행심위가 정보공개를 멈추라는,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산업부 판단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반도체 정보공개는 중국 등 경쟁국에 ‘어서 드십시오’ 하는 것과 같다”는 걱정까지 내놓았다. 19일에는 법원도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고매한 고용부’는 묵묵부답이다. 그 흔한 보도자료 한 장 내지 않았다. 마치 행심위, 산업부, 언론을 싸잡아 ‘물질에 눈멀어 지고지순한 근로자 건강권을 외면하는 자들’로 치부하고, 세상이 아무리 떠들어도 ‘내 일’만 하겠다는 태도다.
그렇다면 지금 고용부는 ‘내 일’을 잘하고 있을까.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다 됐지만 고용노동 주무부처의 존재감은 없다. 17년 만에 최악의 실업률, 한국GM 노사 대립으로 15만 명 실직 위기 등의 고용 악화 뉴스가 넘치는데도 고용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죽하면 고용노동부에서 ‘고용’이란 문패를 떼라는 지적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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