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재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캐나다의 한 조용한 시골마을에 나이트클럽이 생겼다. 클럽이 번창하자 청년들이 영적, 도덕적으로 타락할 것을 우려한 마을 교회 교인들이 모여서 통성으로 기도를 했다. 나이트클럽 망하게 해달라고. 며칠 후 천둥 번개가 나이트클럽 지붕을 덮쳐 클럽이 모두 불탔다. 나이트클럽 사장은 교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 사람들 기도 때문에 클럽에 불이 나서 망했다”고. 법정에 불려온 교인들은 “우리가 기도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고 한다.
LA 한길교회 노진준 목사가 한 설교에서 소개한 ‘우화’다. “재판의 결과는 모르겠지만 나이트클럽 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었고 교인들은 믿지 않았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는 노 목사의 농담에 크게 웃었던 기억이다.
여러 해 교회를 다닌 교인들도 기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시험 잘 보게 해달라고, 승진하게 해달라고, 사업 번창하게 해달라고, 병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바로 이렇다 할 응답을 받는 일은 사실 거의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기도가 바로 기복(祈福) 신앙인들의 기도다.
그렇다면 왜 기도를 해야 하나?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신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주제에 감히 말하지만 기독교의 핵심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이자 소통이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의 애원을 들어주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들어주지 않는다고 아이가 부모와의 소통을 단절하는 건 부모에게나 자녀 모두에게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 “미성숙한 말이라도 안 하는 것보다 좋으니 계속 얘기해줘.” 그게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조금 뚱딴지 같지만 청와대 청원게시판 관련 논란을 지켜보며 기복 기독교인들의 기도가 떠올랐다. 한 언론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국민 청원 게시판으로 몰리면서 청와대가 전지전능한 입장이 돼버렸다’고 썼다. 실제 ‘(조현민 전무 갑질 사건으로) 대한항공 사명을 바꾸라’라는 요구에서부터 ‘이승훈 금메달을 박탈해달라’ ‘(성추행) 김생민 방송 하차’ ‘롯데자이언츠 구단 해체’ 같은 청와대 권한 밖의 요구가 쇄도한다.
짐 캐리와 모건 프리먼이 나온 ‘브루스 올마이티(2003)’라는 영화가 있다. 회사에서 해고되는 등 온갖 불운을 겪은 방송 기자 브루스 놀란(짐 캐리)이 “해고되어야 할 건 하나님”이라며 분통을 터뜨리자, 하나님으로 분한 모건 프리먼이 실제 하나님 일을 브루스에게 맡긴다. 하나님의 파워로 자기 민원만 실컷 해결하던 브루스는 머리 속에 목소리들을 듣게 되고, 하나님은 “사람들의 기도”라고 알려준다. 감당할 수 없는 양의 기도가 몰려들자 브루스는 자동으로 ‘yes’라고 응답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모든 사람들의 기도가 ‘yes’로 응답되자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권한 밖의 요구들을 모두 들어줘 인기를 끌겠다고 청와대가 국민 청원 게시판을 만든 건 아닐 것이다. ‘브루스 올마이티’의 배경인 뉴욕 버팔로처럼 온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란 걸 모를 리 없다. 선동에 능한 좌파 정권이니 여론전에 활용하려고 게시판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건 지나친 음모론이다. 국민들과 직접 소통해 혹시라도 소외될 지 모르는 개인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토론의 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겠다 싶다.
그런데도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못내 걱정되는 건 ‘열심히 기도하면 복이 온다’고 말하는 가짜 목사들이 일부 한국 기독교인들을 타락시켜온 것처럼, 청와대가 본의 아니게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타락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에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청와대에 몰려가도 해결되는 일은 없다. 우리나라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눠진 3권 분립을 통해 공정하고 정의롭고 효율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시위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다. 민주화의 역사가 짧아 아직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을 뿐, 시스템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그러면서 시민의식도 성숙해져 갈 것이다.
전지전능하지도 않으면서 전지전능한 척하는 청와대는 시민의식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도 열심히 하고 헌금 많이 하면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현혹하는 가짜 목사님들처럼… (끝) /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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