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온 "제 스승은 세상…정체성 찾고 떳떳해요"
이병재 "영향력 생기면서 자퇴 따라 할까 무서워"
이로한 "한국 힙합 트렌드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
“제가 뭐라고…”
2000년생 동갑내기 래퍼 김하온, 이로한(배연서), 이병재는 많은 취재진들 앞에서 한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가 뭐라고…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명상래퍼’로 스타덤에 오른 김하온의 영향 탓인지, 이들은 내면의 평화를 찾은 듯 평온하고 침착한, 허세 따위 없는 모습이었다.
지난 2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한 Mnet ‘고등래퍼2'는 타겟층이 좁고 심야 방송인 탓에 1% 전후 시청률에 머물렀다. 하지만 방송 후 공개된 무대 영상들은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참가자의 음원은 각종 차트를 접수하는 등 큰 관심을 받았다.
그동안 Mnet에서 방영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중 가장 착한 프로그램이었다. ‘슈퍼스타K’나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와 같이 구설에 올랐던 ‘악마의 편집’도 출연자의 인성 논란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제작진의 노고가 컸다. 출연자 심의위원회를 마련해 내부적인 검증을 거쳤다.
방송에서 톱3에 오른 세 사람 모두 한때는 손가락질 받는 자퇴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진심은 결국 시청자에게 닿았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열린 ‘고등래퍼2’ 종영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전지현 PD, 김태은 CP는 이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전지현 PD는 “제작발표회 때 10대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잘 담아내고, 많은 분이 공감한 것 같아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태은 CP는 “방송을 하면서 짜릿하고 저릿한 순간이 많았다”라며 “나이는 어리지만 깊은 사고관과 가치를 가지고 올곧게 서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잘 전달된 것 같아 뜻깊었다”라고 강조했다.
방송 내내 ‘엔딩 요정’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화제를 모아온 우승자 김하온은 “혼자 음악하고 혼자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눴는데,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게 세상이 넓어져서 좋다”며 “병재, 로한이와 같은 좋은 친구를 얻었다”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이병재 또한 “프로그램을 통해 제일 좋은 것은 김하온이라는 친구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이로한은 "준우승을 했다는 것이 실감이 잘 안 난다"라며 "준우승이 뭐라고 저를 자꾸 찾아주시는지 모르겠다. 일단 생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일찍 탈락할 줄 알았는데 기분이 참 좋다"라고 말했다.
랩의 가장 큰 매력은 래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고 들려주는 것이다. ‘고등래퍼’는 음악을 한다는 10대들 혹은 자퇴생에게 보이는 부정적인 인식 혹은 편견을 깬 프로그램이다.
김 CP는 “10대의 이야기 중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시즌 1에서 했던 대규모 지역 예선을 없애고 논란이 없는 시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서바이벌이긴 하지만 경쟁이나 갈등을 최대한 빼고 아이들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치중 해서 논란이 적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 PD는 “서바이벌로 누가 1등이냐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그들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들어볼 수 있었다”라며 “아이들이 누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공감을 많이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톱3를 차지한 김하온, 이로한, 이병재는 공교롭게도 현역 고등학생이 아닌 자퇴생이다. 이병재는 "다른 곳에서 배우려고 자퇴를 했고 부모님과 약속한 대로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이 됐다. 자퇴하고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음악이 됐든, 뭐가 됐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것이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거라면 자퇴도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라면서도 "저희 같은 사람들이 영향력이 생기면서 무작정 (우리를 따라) 자퇴를 하려는 사람이 생길까 무섭다"고 우려했다.
이로한 또한 "자퇴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자퇴한 사람, 자퇴할 사람 모두 알고 있다"면서 "제게 달린 댓글에 긍정적인 말들이 많더라. 자퇴에 대한 시선을 바꿀 수 있어 기뻤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하온은 "시청자 반응 중 '용기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스스로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 같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어서 개인적으로 뜻깊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음원차트 상위권을 선점하며 인기스타로 발돋움했다.
김하온은 “보잘것없는 저희를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다. 바라만 보는 위치에서 바뀌어 보니까 오묘하고, 세상 신기하다”라고 놀라움을 드러냈다.
'고등래퍼2' 이전에 '고등래퍼1', '쇼미더머니6'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김하온은 이번 시즌에서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하온은 "지난해 떨어지고 나서 세상에 다양하고 멋진 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내가 빛나려면 저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 자신을 찾자는 생각으로 많은 미디어를 접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책, 영화, 강의 영상도 보고 그러다 보니 김하온이 만들어져 있었다. 딱히 한 분을 멘토로 지정하지 못하겠다. 말하자면 세상이 저의 스승"이라고 밝혔다.
이어 "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못 찾았을 때도 랩이란 것을 하고 싶었다. 다른 분들 음악을 듣고 따라 하며 뜻도 모르는 욕과 제스쳐도 한 것 같다. 현재는 하고 싶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행동과 음악을 하고 있어 만족한다"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로한은 “처음 목표는 노래방에 동네 친구들과 갔을 때 최신 노래에 제 이름이 걸려있는 거였는데 ‘북’부터 ‘Like it’ 등 3~4개의 노래가 차트에 있어서 놀랐다. 처음에 모든 음원 사이트 앱을 다운받아 추이를 살피기도 했다. 지금은 관심 끄고 내면의 평화를 찾으며 운명이 이끄는 대로 살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전혀’, ‘탓’, 바코드’ 등 내면의 어두움과 불안, 우울의 감정을 랩으로 표현한 이병재도 “이 세상에 가수, 음악을 잘하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 그 위에 있으니 과대평가된 기분”이라며 “차트에 대한 욕심 없고 제 음악에 대한 만족도 없는데 감사하기만 하다”고 대답했다.
세 사람은 생방송 무대 중 가장 인상적인 곡으로 이병재의 탓을 꼽았다. 이로한은 “저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데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무대는 ‘탓’ 밖에 없다”고 했고, 김하온도 “호소적이고 진정성이 잘 묻어나 멋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병재는 “’탓’은 원래 ‘병풍’이란 믹스테이프에 있던 건데 당시 아무도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 똑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에, 가사에 열광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게 묘하고 아이러니했다. 좀 여러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김하온은 ‘아디오스’, 이로한은 ‘북’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고등래퍼2’ 종영 후 이병재의 소속사 전속계약 소식이 들려왔다. 김하온은 하이어뮤직, 이병재는 멘토 딥플로우가 수장으로 있는 VMC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병재는 "방송에 출연했을 때 이미 소속사와 계약된 상태였다”라며 “현 소속사 대표님이 제가 아무도 없을 때 손 내밀어 주신 분이다. 그러다가 방송이 잘 된 거다. 사람들이 아쉽다고 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전혀 아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하온과 소속사가 다르다고 해서 함께 음악을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키프클랜도 음악 하는 사람보다 친구로 모인 거라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다고 해도 멀어지거나 음악을 같이 못 하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 잘 뭉쳐서 해 볼 생각이다"라고 강조했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저는 빈첸이 될 것"이라며 "누구처럼 되고 싶다거나 롤모델도 없다. 변하기 싫고 지금처럼만 음악을 하고 싶다. 저는 그냥 제가 되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김하온은 “여러 소속사와 이야기 중이다. 확정된 것은 없다”라면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고 평화롭고 재밌는 곳으로 바꿀 수 있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헤매는 분들에게 어쩌면 조금이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포부를 전했다.
이로한은 “역시 여러 소속사와 이야기 중”이라며 “몇 년 안으로 붐뱁이 한국 힙합의 트렌드가 될 수 있게 노력할 거다. ‘고등래퍼’를 통해 얻은 인지도와 사람들과 함께 어떤 경로로든 멋있는 것을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작진에 따르면 ‘고등래퍼’는 계속될 예정이다. 김태은 CP는 “많은 분이 사랑해주신 덕에 내년 초쯤 선보이게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김하온, 이로한, 이병재는 기자간담회가 끝나고도 한동안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자신들의 얼굴과 이름이 걸려있는 현수막을 촬영하며 마지막까지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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