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 공개되면… "마이크론·도시바에 삼성 핵심정보 다 넘어갈 것"

입력 2018-04-25 17:45   수정 2018-04-26 14:32

황철성 서울대 교수 분석

지하실 높이만 알아도 어떤 장비 있는지 유추
화학물질 사용량 알면 공장 배치도까지 파악 가능



[ 고재연 기자 ] “반도체 공장을 설계하는 연구원들은 경쟁사 지하실 층고까지 궁금해합니다. 지하실 높이를 알면 어떤 장비가 어느 위치에 배치됐는지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문진국·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 주최로 열린 ‘산업안전과 기업기술보호 현황과 과제 긴급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고용노동부의 삼성전자 반도체 관련 작업환경 측정 결과보고서 공개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공정은 ‘최적의 레시피’를 찾아내 시행착오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황 교수는 “반도체 생산의 여덟 가지 핵심 공정 중 가장 쉬운 세정 공정에는 ‘표면 조절(surface control)’이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재료 등 널리 알려진 정보를 제외하더라도 각 조합에 따라 나오는 경우의 수가 31억2500만 개에 달한다”며 “경우의 수 하나당 실험에 걸리는 시간이 10분이라고 가정하면 연구 기간만 6만 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처럼 핵심 기술 일부가 담겨 있는 보고서를 입수한다면 경우의 수는 2500개까지 줄어든다. 반 년의 실험 기간을 거치면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된 작업환경 측정 보고서에는 어느 정도의 핵심 정보가 담겨 있을까. 650쪽에 이르는 작업환경 보고서를 살펴본 황 교수는 “국가 핵심기술을 비롯한 방대한 기업 기밀정보가 다수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법 규칙에 따르면 작업환경 측정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양식이 정해져 있다. 공정 및 유해 인자, 사용량 정보와 측정 장소 레이아웃 등을 의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반도체 핵심 기술을 유추할 만한 정보는 충분하다는 의미다.

먼저 소재 종류 및 사용량을 통해 특정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가 뭔지 확인할 수 있다. 작업환경 측정 결과보고서는 6개월마다 작성되기 때문에 특정 물질의 사용량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A물질 사용량이 많았는데 2016년부터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던 B물질 사용량이 크게 늘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삼성전자가 2016년 말 특정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B물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보고서에 공개되는 핵심 소재의 코드명을 통해서도 어떤 소재를 사용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CMP 공정의 핵심 소재는 CMP 슬러리다. 보고서에는 CMP 슬러리의 코드명이 공개돼 있다. 코드명은 ‘물질_제품 종류_제조국_제조사_제조연도_점도’ 등으로 이뤄진다. 코드명이 ‘SI_V64_KR_AB_17_004’인 경우는 ‘실리카 소재로 64단 V 낸드를 위해 사용되며, 한국의 AB사가 제조한 제품으로 2017년에 제조됐으며 점도는 4단계’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재 제조회사 AB사를 통해 CMP 슬러리가 어떤 제품인지 알아내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

공장 배치도 역시 유추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역별 화학물질 사용량이 기재돼 있다. 1구역에는 A화학물질이, 2구역에는 B화학물질이 사용된다고 표기하는 식이다. 반도체업계에선 A화학물질이 사용되는 공정을 유추해 장비 배치도를 그릴 수 있게 된다.

황 교수는 “D램 3위 업체인 마이크론, 낸드플래시 2위 업체 도시바 등이 삼성전자의 작은 공정 기술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쓴다”며 “중국의 추격보다 무서운 것은 이들이 삼성의 핵심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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