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이냐, 불법집회냐"… 경찰 vs 시위대의 숨바꼭질

입력 2018-04-27 17:35   수정 2018-04-28 18:44

경찰팀 리포트

현행법상 집회 열기 위해선
48시간 전에 경찰 신고 필요
국회·청와대 등 100m내선 불가
기자회견은 신고 없이도 가능

오락가락 법해석
작년 5월 기자회견 연 복지사들
"처우 개선" 구호 외쳤다고 조사
지난 20일 한국당 기자회견선
"댓글 공작" 구호 외쳐도 제지 안해

명확한 기준 필요
집회 시위 신고 온라인제 변경
구호 외쳤다고 강제해산 말고
추후 위법 여부 판단해야



[ 임락근 기자 ]
#1. 지난해 5월 광주광역시의회 옆 문화광장에서 사회복지사 1000여 명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6년까지 매달 받다가 끊긴 수당 10만원의 재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한 차례 구호를 외치고 윤장현 광주시장 집무실로 이동해 탁자 위에 장미꽃을 올려놓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광주서부경찰서는 두 달 뒤 행사를 주도한 이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소환했다.

#2. 지난 20일 오전 청와대 앞 분수광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야당 의원 50여 명이 모였다. ‘더불어민주당원 댓글공작 규탄 및 특검 촉구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 원내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일제히 확성기와 피켓을 들었다. “국민 기만 김경수를 즉각 구속하라” 등 구호도 외쳤다. 종로경찰서는 “집회·시위가 아니라 기자회견이므로 집시법 위반이 아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냐 집회·시위냐…판단은 ‘경찰 몫’

기자회견은 표현의 자유의 일환으로, 누구에게나 언제나 보장된 권리다. 반면 집회나 시위는 사전신고 등의 절차를 밟은 뒤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상반된 위의 사례에서 보듯 기자회견과 집회·시위를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해 논란을 부른다.

기자회견과 집회·시위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법적 규정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경찰 관계자는 “기자들을 초청해 발표문을 낭독하는 등 순수한 기자회견은 철저하게 보장하고 있다”며 “다만 △확성기를 사용하고 △시위용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제창하는 등 집회·시위적 요소가 나타난 기자회견은 현장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규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정당 등이 집회·시위를 위해 기자회견 형식을 빌리는 것은 현행법상 사전 신고 절차가 번거롭고 집회·시위를 할 수 있는 장소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옥외집회를 열기 위해 최소 48시간 전에 집회 장소의 관할 경찰서에 신고해야 한다. 관할 경찰서가 겹치는 곳에서의 집회·시위는 관할 지방경찰청에 신고해야 한다. 경찰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경우를 제외하면 신고된 집회를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신고를 하고 싶어도 다른 단체에 장소를 선점당해 예정된 집회에 차질을 빚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광화문광장이나 서울역광장 등 인기 장소는 집회 신고를 하려는 단체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 집회·시위 신고를 받기 시작하는 720시간 전부터 관할 경찰서에 신청서를 먼저 내기 위해 전날부터 밤새 노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누군 되고 누군 안되고” 형평성 논란

집회를 하는 단체들이 기자회견의 형식을 빌리는 또 하나의 이유로 집시법 11조가 꼽힌다. 집시법 11조는 국회의사당, 청와대, 법원 등 국가 주요기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못하도록 규정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청와대와 국회 등 상징적인 장소에서는 집회·시위를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봉쇄해 놨으니 그곳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는 기자회견 형식을 빌릴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반면 기자회견은 이 같은 제약이 없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되는 권리인 데다 집회·시위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집시법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정당들이 갑작스럽게 항의 방문을 하거나 옥외에서 규탄 모임을 할 때 기자회견 형식을 빌릴 때가 많다.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47명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 역시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 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통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불법 집회가 맞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국회의원이고 이 과정에서 폭력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기자회견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자회견은 되고 집회·시위는 안된다는 식의 규제는 필연적으로 형평성 논란을 부르게 된다”며 “해외 선진국처럼 사전 신고 여부가 아니라 폭력성 여부를 따져 상황에 따라 경찰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경찰 “고충 많지만 집회의 자유 보장”

집회·시위를 관리하는 경찰로서는 고충이 만만치 않다. 한 일선 경찰서 정보과 형사는 “사전에 신고되지 않은 집회는 다른 지역 병력을 지원받는 데 한계가 있어 자칫 폭력 시위로 변질되더라도 경찰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자회견과 집회·시위를 구분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조심스럽다. 경찰청 관계자는 “구별하는 근거를 마련해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정상적으로 치러질 수 있는 기자회견까지 제약을 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지금처럼 현장에 나가 있는 지휘관이 기자회견의 성격, 폭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각종 집회·시위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으로 구성된 경찰개혁위원회는 지난해 9월 집회·신고 절차와 경찰의 대응방식 등에 대한 개선 권고안을 내놨다. 권고안에는 △집회·시위 온라인 신고시스템 도입 △신고 간소화를 위한 법 개정 △신고 내용 변경절차 마련 등이 담겼다.

경찰청은 이 권고안을 바로 수용했다. 1인 시위 및 기자회견은 최대한 허용하기로 했다. 기자회견이 집회·시위에 해당하는지 판단이 어려울 때는 일단 행사를 그대로 진행하도록 한 뒤 나중에 위법 여부를 가리도록 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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