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몇 차례 ‘돌발 행동’을 했다. 남북이 사전에 합동 리허설까지 하면서 꼼꼼히 준비했던 시나리오에서 벗어난 행동이었다. 즉흥적인 언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5월 말~6월 초로 예상되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의 ‘궁합’이 어떨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정은은 이날 오전 9시27분 북측 판문각 정문에서 모습을 드러내 9시29분 판문점 본회의실(T2)과 소회의실(T3) 사이 군사분계선(MDL)에서 기다리고 있던 문 대통령과 만나 악수했다. 짧은 대화를 한 김정은은 MDL을 넘어 남측 땅을 밟고 문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했다.
이때 김정은이 갑자기 문 대통령에게 MDL 북쪽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의 ‘월경’은 당초 예정엔 없던 일이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남측으로 오셨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김정은이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김정은이 각본을 벗어났다”며 “각본에 없는 순간이고, 아니면 고도로 연출된 장면”이라고 보도하는 등 외신들도 이 장면에 주목했다.
김정은은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선 예상치 못한 농담을 했다. 그는 “오늘 만찬을 위해 어렵사리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갖고 왔다”며 “문 대통령께서 편한 마음으로 멀리서부터 가져온”이라고 했다가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돌발 행동으로 보이지만 어느 정도 준비한 연출일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정은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의도적으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부각하려 했다는 것이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대본에서 벗어난 김정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제목으로 김정은의 돌발 행동을 자세히 보도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트럼프 대통령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자주 한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전망했다.
긍정적인 시나리오는 “즉흥적인 성향의 두 지도자가 회담에서 긍정적인 타협점을 만들어내고 개인적인 친분도 쌓는 것”이다. 반면 “양자 협상이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두 배가 될 수도 있다”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미 정보당국도 김정은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 정보당국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하는 말과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까지 주의깊게 연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정보당국이 수년 동안 김정은의 가족사와 연설, 사진, 동영상을 분석했다”며 “김정은 일가의 전직 일본인 요리사와 탈북자 인터뷰까지 했다”고 전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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