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교 산책
예정시간 훌쩍 넘긴 '친교 산책'
문재인 대통령, 장시간 대화 주도
김정은, 고개 끄덕이며 미소
'정주영 소떼 길'에 소나무 식수
문 대통령 대동강, 김정은은 한강 물 부어
[ 김우섭/배정철 기자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오전 첫 대면에 이어 오후 두 번째 만남에서도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별도의 배석자 없이 이뤄진 두 정상 간 ‘친교 산책’은 당초 예정 시간을 훌쩍 넘어 43분간 진행됐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도보다리 위의 단독회담’이었다. 평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스타일인 문 대통령은 이날 장시간 대화를 주도했다.
◆김정은 “어렵게 찾아온 새봄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이날 오후 4시27분, 1차 회담이 끝난 지 4시간32분 만에 다시 만났다. 김정은은 오전 회담 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으로 갔다가 전용차인 벤츠 S600에 탑승해 12명의 경호원과 MDL을 다시 넘어왔다. 차에서 내린 김정은은 마중나온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악수하는 것으로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두 정상 간의 ‘도보다리 회담’이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은 공동 기념식수(植樹) 행사를 한 뒤 도보다리까지 함께 산책했다. 수행원은 없었다. 두 정상은 다리 끝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당초 예정된 20분 안팎의 시간을 훌쩍 넘겨 30분가량 대화했다. 다리를 오가는 시간까지 합하면 43분간 ‘둘만의 대화’를 했다. 남북 정상이 배석자 없이 휴전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대화한 셈이다. 이미 공동선언문에 합의한 두 정상이 다가오는 북·미 대화와 비핵화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기회였다는 평가다. 대화는 문 대통령이 주도했고, 중간중간 김정은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기도 했다.
다리로 이동하는 폭 1m 남짓의 좁은 길에서 김정은이 오른쪽 발을 도보 밖으로 내딛는 등 연장자인 문 대통령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설주 “한 것도 없이 와 부끄럽다”
두 정상의 만남을 제외하고 가장 관심을 끈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는 오후 6시18분 등장했다. 벤츠 S600을 타고 온 이설주는 김정은이 앉는 좌석(운전석 대각선 뒷자리)의 옆자리에서 내렸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오후 5시53분쯤 미리 도착해 이설주를 기다렸다. 두 퍼스트레이디는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김 여사가 이설주의 허리를 감싸 안고 함께 평화의집으로 이동했다.
이설주는 문 대통령이 “아내가 평화의집 1층에 걸린 북한산 배경의 그림을 고르는 데 도움을 줬다”고 말하자 “(김 여사와 달리) 부끄럽다. 저는 한 것도 없이 이렇게 왔다”며 웃었다. 문 대통령은 “두 분이 같은 성악 전공”이라며 “앞으로 문화예술 교류를 할 텐데 문화예술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해 달라”고 했다. 이설주는 “앞으로 정성을 다해 돕겠다”고 답했다. 김 여사는 경희대 성악과 출신이고 이설주는 북한 예술학교로 알려진 금성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두 정상은 도보다리 회담 전 남북 대결과 분단의 상징이던 MDL 위에 평화와 번영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심었다. 식수 장소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한 MDL 인근 ‘소 떼 길’이었다. 김정은은 식수에 앞서 “어렵게 찾아온 새봄을 (소나무처럼) 잘 키워 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전 회담에서도 두 정상은 깜짝 발언을 쏟아냈다. 김정은은 “대통령께서 우리 때문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시느라 새벽잠을 많이 설쳤다는데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되셨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께서 우리 특사단이 (북한에) 갔을 때 선제적으로 말씀을 주셔서 앞으로 발 뻗고 자겠다”고 답했다.
판문점=공동취재단/김우섭/배정철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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