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냉정과 열정 사이

입력 2018-04-28 00:48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한 정상회담을 위해 출발한 2000년 6월13일,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해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공항 영접 장면을 TV로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두 번째 정상회담 때인 2007년 10월2일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벅찼다”고 했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는 모습을 본 시민들 역시 “너무 좋고 감동적이어서 심장이 멎을 것 같다”고 했다. 남북이 함께 얘기하는 ‘평화’ ‘통일’ ‘화합’은 아름다운 말이다. 그러나 같은 말을 두고 해석이 다른 경우가 많아 걱정이다.

1차 회담에서 김정일은 “통일 이후 주한미군 주둔에 동의한다”고 했지만 북 관영통신들은 얼마 후 주한미군 철수를 다시 외쳤다. 대북송금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 정부와 북한은 “한·미 보수세력의 재 뿌리기”라며 펄쩍 뛰었지만, 특검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회담을 보면서 ‘북한이 한국을 이용해온 역사’를 상기시켰다. 2000년 김정일은 깜짝연출로 이미지를 개선했고, 2007년에는 경제 특구 등 경제적 이득을 노렸으며, 이번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희망은 높게 갖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눈은 크게 떠라”고 조언했다.

국제적 평화협정이 파기된 사례는 많다. 1925년 독일은 영국 프랑스 등과 ‘로카르노조약’을 맺은 뒤 기습 침공으로 뒤통수를 쳤다. 1938년 영국과 맺은 ‘뮌헨협정’도 히틀러의 속임수였다. 1973년 베트남 평화를 위한 ‘파리협정’은 2년 뒤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무위가 됐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협정의 핵심 내용도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다 포함돼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1991) 합의에도 불구하고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8월 “오직 총대로 적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리고 서울을 단숨에 타고 앉으며 남반부를 평정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외 안보 전문가들은 “평화는 협정이 아니라 이를 지킬 수 있는 힘에 의해 보장된다”고 지적한다. 물론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는 크다. 하지만 과거의 악몽 때문에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북한 집권자는 독재체제의 반영구적인 ‘정규직’이고, 우리 쪽은 4년 뒤 임기가 끝나는 ‘비정규직’이 아닌가. 우리가 꿈꾸는 ‘한반도의 봄’은 낭만적인 감상이나 환상이 아니라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때 비로소 올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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